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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Aug 31. 2022

복실복실한 사랑(2)

 마을이는 다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의 품으로 돌아갔다. 마을이를 안겨 보낼 때 나는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쉬웠던 반면 마을이는 기다렸다는 듯 꼬리, 아니 엉덩이를 흔들어가며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내게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 반복됐다.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요함 또는 적막함과 함께 이상하리 만치 조용한 주변을 새삼 의식하게 됐다.


 마을이가 있을 땐 집안이 조용할 틈이 없었다. 매번 탁탁 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돌아다녔고 물을 마시거나 사료를 먹는 소리를 냈으며, 창문에 붙은 나방이라도 발견하면 쉼 없이 으르렁거리고 경계하는 가쁜 숨소리를 냈다. 그러다 자기가 먼저 ‘왈!’ 하고 짖고는 눈을 질끈 감고 눈꺼풀을 뒤흔들며 놀래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참 보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 외에도 곰인형을 물어뜯거나, 이불과 드잡이를 하는 둥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통에 나는 그저 두 눈으로 그 소리의 주인을 좇아 미소 짓기 바빴다.


 적막함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서부터는 반대로 심신의 안온함이 느껴졌다. 더 이상 마을이와 산책을 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에 어찌나 크게 안도했는지 종아리 아래쪽 근육이 한층 더 풀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을이는 나가 놀고 싶을 때마다 가만히 나를 마주 보고 앉아서 ‘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을 짓고 히융, 히융 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 너도 이 작은 집이 답답하겠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도록. 그럴 때마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웬만하면 옷을 갈아입고 마을이에게도 하네스를 입혔다.


 짧게는 20분, 길면 한 시간도 더 넘어가는 산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 혼자 귀에 이어폰을 끼고 리듬을 타고 걸어가면 쉽게 갔을 거리인데, 마을이와 함께 가려면 마을이의 모험 속 탐색 활동을 가만히 서서 기다려줘야 했다. 마음에 드는 꽃을 발견할 때마다 멈춰 서서 향을 맡고 영역을 표시하려 자주 멈췄고, 간혹 다른 강아지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사정없이 싸움을 거는 통에 마을이를 껴안고 달아나기도 해야 했다.


 어느 날은 아침 7시부터 산책을 가자고 조르는 마을이를 데리고 뒷산을 걸으며 이거 참 어렵구나, 싶었다. 가만히 누워서 제발 쉬고 싶다, 죄책감 같은 거 느끼고 싶지 않다, 그런 충동이 들었다. 도대체 얘는 뭘 먹고 이렇게까지 활발한 거지? 분명 나이가 굉장히 많다고 하지 않았었나?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이유 모를 원망마저 들었다. 그렇게 정신을 놓고 30분쯤 걸었을 무렵, 귀를 팔랑거리며 뛰다시피 하고 있는 마을이의 뒷모습을 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너의 귀여운 점만 사랑하려고 했구나.


 책임감은 사랑 안에 얼마큼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산책 후 코 옆에 잔뜩 흙을 묻힌 마을이를 꼼꼼히 씻기며 생각했다. 내가 너의 마음을, 그리고 너의 몸을 염려하고 또 그만큼 너의 안녕을 바라고, 챙기고, 위하는 모든 행위가 곧 너에 대한 사랑으로 대치될 수 있을까? 어쩌면 사랑은 생각보다 단순하구나. 수건으로 물기를 바싹 말려주고 기분이 좋아져 방방 뛰는 마을이를 보며 전에 없는 애틋함을 느꼈다. 나는 너의 귀여움만이 아니라 너의 모든 면을 사랑할 거야.


 나중에 들어보니 동료는 그렇게 자주 산책을 가지는 못한다고 했다. 보통은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두 가지 결론을 냈다. 하나는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다른 이를 위하다 내 심신이 지쳐버리면 결국 그를 원인제공자로 몰아붙이고 원망할 테니 이는 곧 서로에게 독이 될 뿐이었다. 나와 다른 이를 함께 위하는 적정한 선이 필요하다. 나머지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춰야 하는 책임감이 있다는 것. 비록 내 심신이 지칠지언정 너의 평온을 위해 내가 조금 더 희생하겠다는 마음가짐. 또 다른 형태의 사랑. 그런 것은 고귀하게 남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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