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그림자
강원도 어느 산 속, 한 그림자가 걷고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우거진 숲 속에는 그림자와 동물들만이 있을 것 같은 정적감이 있을 뿐이다. 한 시간 정도의 틈이 흐른 뒤 그림자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한 듯 멈추어 선다.
'여기였나?'
한 동안을 한 곳을 응시하던 그림자는 왼손을 가만히 주먹 쥐어본다. 평범한 손은 아닌 것 같은 그 모습은 오랜 시간 묵혀온 시간을 고스란히 화석처럼 숨기고 있다. 굵은 핏줄이 그의 손등에 날이 선다.
'왜, 왔지?'
순간 자신의 소리에 놀란 그림자는 움찔거리며 한 걸음 뒷걸음 친다. 지금까지의 산 오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오른손에는 낫이 들려있고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휴게소에서 본 마지막 시간은 오후 12시가 막 넘을 때였다. 그 후의 시간은 전혀 기억에 없다.
'보고 싶어 왔잖아.'
두 번째의 내가 말한다.
'보고 싶었다고? 웃기고 있네~. 일년 전 만해도 넌 죽고 싶어했잖아. 이제 소원대로 됐잖아.'
라고 세 번째 그림자가 말한다.
'언제? 나는 죽을것 같다고 생각만 했지 진짜 죽고 싶은 맘은 진짜야 없었다구.'
'그럼 나하고 한 얘기는 뭐야? 죽고 싶다고 그렇게 애걸복걸하면서 나한테 칭얼거렸잖아. 후회같은 건 없다고네 입으로 해놓고 이제와서 아니라고, 역시 인간이란....'
그림자는 벌써 3개의 그림자로 분리되어 서로 죽일 듯이 응켜붙어 난도질을 하고 있다.
'그만, 그만 좀 해. 제발 부탁이야. 내가 죽으면 되잖아.'
서로를 찢어 발기던 그림자 둘은 첫 번째를 향해 미소라고 할 수 없는 얼굴로 쳐다본다.
'넌, 끼어들지마. 이미 죽은 네가 왜 지랄이야. 그리고 다 너 때문이걸 몰라!'
오른손의 낫이 땅에 툭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뭐, 내가 죽었다고. 그럴리 없어. 난 분명히 내 차를 몰고 휴게소에 들렀고 화장실에도 들렀단 말이야. 그럼 나를 보고 가던 길을 양보한 사람들은 다 뭐야?'
두 번째 그림자가 말한다.
'설마 네가 가는 길을 비켜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넌 뒤에도 눈이 달렸니?'하며 비웃음같은 것을 비춘다.
'그럼 다 거짓이란 거야!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그만해 제발! 둘 다 죽여버리기 전에.'
갑자기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림자가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어디 해 보시지.'
'네 마누라는 이미 다른 남자와 잤다고. 너를 잊었다고! 이 등신아! 넌 죽었다고. 이젠 인정하고 우리 갈 길을 가자. 우리도 힘들어'
둘이 동시에 말하자 그 소리는 이명을 넘어 천둥소리가 되어 골수까지 아픔을 전해온다.
'그랬지'
그래 난 이미 죽었다.
화창했던 봄 2023년 어느 날 주마등이 스치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