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좋아
이제 돌아갈 집은 없어졌다.
아버지가 스스로
자신의 목을 따버린 그날,
나는 혼자가 되었고
집은 더 이상 과거의 집이 아니었다.
3교대로 일하는 생활로 인해
언제 어디선 제대로 쉬지 못하는
신세가 된 지도 벌써 6년째,
고통학교를 제대로 졸업도 못한
그에게 일 같은 일이 찾아 올리 없었고,
근처 항구에 있는 한 수산업자의
도매가게에서 막 경매로 사 온 고기를
상자로 옮겨 담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버지의 자살로
경찰서에 불려 가 사는 동안에
'이제는 안 와도 괜찮다'는
문자가 왔다.
어제였든가?
아니 새벽 3시였으니 오늘인 건가?
대체 가능한 인간인 나,
제 인생에 행복은 없다고
소주 한 잔에 김치를 먹고,
빨리 취해서 쓰러져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수면제가 필요 없는 저렴한 인생처럼
한 병에 취할 수 있는 소주마저
이제는 함부로 살 수 없는
지경에 와버린
자신이 무척이나
행복하다.
언제 이렇게 비싸졌지?
함부로 산 인생
전부 다 아버지 엄마 탓이다.
태어나자마자
할머니 집에 버려진 그,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싸우다 넘어져
뇌진탕으로 돌아가셨다.
"네가 뭔데 나한테 하지 말래.
씨발 나한테 땅 같은 것 줘본 적 있어?
남들은 척척 사업하라고
돈을 쥐어주는데
평생 나한테 용돈 받아
살아왔으면서
이젠 돈도 못 주니까.
왜, 이제 아들도 아니야?"
술을 먹어 혀가 꼬인
아버지는 쓰러져
미동도 않는
할아버지를 계속 두들겼다.
안 죽은 것 알고 있으니
일어나하는 것처럼.
그날도
이미 술에 취해
할아버지에게
방 한 칸짜리 강원도 산 구석
다 쓰러져 가는 집을
팔자고 하다가
싸운 것이었다.
그때가 중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팔아봤자 몇 백도 아닌
몇 십만 원도 안 되는 건물,
집마저 팔자고 한 것이다.
한평생을 막일로 일하다
40 후반에 집에 기어들어와
하루 종일 술만 먹고
외상 천지로 만든 아들이다.
용돈.. 웃기고 있네.
준 돈보다 더 받아갔으면서..
도대체 셈이란 걸 아는 놈인가 싶었다.
작은 방에서 몰래 보던 나는.
"왜 자꾸 생각나지? 씨발 놈 잘 갔잖아."
오늘따라 취하지 않는다.
벌써 한 병이 다 되어가는
지경인데 말이다.
술이란 참 이상하다.
마실수록 점점 취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마셔야 되는
이상한 놈이다.
일어났다.
그리고 출근하듯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쓰인
영화에서 보던
현관문을 장식하고 있던
노란색 x자 띠를
넘어
집을 나선 그.
자, 이제 오늘도 해야지.
나의 유일한 오락이자
삶의 목적을
"칵"하며
노란색 농이 진한
가래를 뱉은 그
바지를 추켜 올리며
어둠 속으로 사려진다.
무엇인가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