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부모님을 떠나보내드렸거나 또는 연로하셔서 몸과 정신이 병 중에 계신 분들이 많다. 본인이 아프거나 배우자가 병이 깊어져서 고통 중에 있는 지인들도 하나 둘 늘어간다.
내 부모님은 두 분 다 칼로 도려내듯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는 갑자기 쓰러지셨고 호플리스가 되어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으로 하루도 안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사인은 뇌출혈이었고 마지막을 아무 준비도 없이 말씀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엄마가 없어져버렸다.
엄마의 부재는 엄마를 잃은 슬픔뿐 아니라 엄마라는 필터가 사라진 아버지를 마주하게 했고 아버지와의 갈등은 나의 성장기와 20대를 위태롭게 흔들어 댔었다. 갈등의 골이 깊어가는 만큼 엄마에 대한 슬픔은 커지기만 했고 위로받지 못한 슬픔은 삶 곳곳에서 내 발목을 잡곤 했었다.
아버지는 큰 아이가 8개월 때 아침에 전화통화까지 했었는데 점심에 갑자기 쓰러지셔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떠나신 뒤였다. 아직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또 떠나버리셨다.
내가 경험한 부모님과의 이별은 이렇게 매정하기만 했다. 어떻게 두 분 다 자식들에게 준비할 틈을 주지 않으셨을까. 무언가 해드릴 수 있는 기회도 슬픔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의 전환장치도 없이 보내드릴 틈도 없이 떠나셨다. 엄마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베인 것처럼 아프다.
시아버님은 오랜 시간 병 중에 계셨다. 일 년에 반은 병원에서 지내셨고 일주일에 한 번씩 내야 하는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젊은 부부는 땀 흘리며 뛰어다녔다.
아버님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심장수술을 하기로 한 전날 아버님은 아들도 아니고 딸도 아니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셨다.
"얘야, 많이 떨리고 무섭다."
"다 잘될 거예요. 이번에 싹 고치고 이제 편안해지실 거예요. 아버님, 힘내세요. 다 잘될 거예요."
그러나 잘되지 못했다. 아버님은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회복하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아버지보다 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고 응원해주셨던 시아버님을 보내드리며 참 많이도 울었었다.
결혼 전에 각자의 엄마를 잃고 결혼 후에는 이렇게 또 각자의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30대에 양가 부모님을 모두 보내드리고 종가의 맏이가 되어 마땅히 해야 하는 도리를 짚으며 분주히도 살았다.
살아오는 고비고비마다 힘들어서 지치면 내 역성 좀 들어주는 한분만 계셨으면 참 좋겠다 싶은 적도 많았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면서 엄마의 손길을 누리는 친구들이 세상에 제일 부럽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나도 친구들도 늙어가고 부모님의 병환을 돌보느라, 그동안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느라 부모님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름이 깊어간다. 어느 병환이 무겁지 않겠냐만 육체의 퇴행이든 정신의 퇴행이든 의지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돌보아야 하는 가족들도 옆에서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도 그저 안타깝게 아프기만 하다.
정신을 잃어 모든 게 지워진 치매는 너무도 가슴 아프고, 정신은 또렷한데 말도 행동도 걸음조차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퇴행성 질환은 뭐라 말을 보태기도 죄송할 만큼 아프고 또 아프다.
아픈 본인이나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아픔에 경중이 있을 수 없지만 모든 기억이 지워져 초기화된 부모님을 바라보는 자식들의 마음, 정신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지는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의 절벽에 선 마음, 그 절벽 끝에서 한발 한발 미끄러지며 무너지는 부모님, 아내, 남편 곁에 선 가족들의 마음.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마음이 낭떠러지에 서 있다.
평소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지인의 아버지는 흰머리가 돋은 딸을 여전히 소녀처럼 아끼고 사랑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모든 기억을 지우고 아기가 되셨다. 아버지를 돌보며 딸은 그동안 아버지가 사랑 주는 법을 가르쳐주셔서 그 힘으로 그 방법으로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살필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마음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내리사랑, 위로 사랑이 모자라지 않게 딱 채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세상에 태어나 자라고 늙어 다시 세상을 떠나는데 왜 우리는 병들어 떠나야 하는 건지. 죽음에 이르는 병을 통해 우리가 마지막으로 수행해야 할 미션은 무엇인 건지. 어쩌면 우리는 웰다잉(well-dying) 하기 위해 웰비잉(well-being)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윗이 사울의 아들 요나탄에게)
"저와 죽음 사이는 한 발짝밖에 되지 않습니다."(1 사무엘기 20,3)
죽음은 바로 내 한발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이 나이 듦이 아닌가 싶다.
오늘 가까운 지인의 병환이 심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자들이 좋아했던 교수님이었고 문화예술에도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고 특히 사람들을 좋아했던 선한 이웃이었다. 점점 무디어져 가는 육신과 그럴수록 더욱 날카롭게 지력을 집중하는 정신 사이에서 부디 내가 세상에 오게 된 사랑을, 내가 세상에 뿌린 사랑을 잊지 않으시길...
사람으로 태어나 나이 들어 늙어가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내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길이 참으로 어렵고 무겁다. 내 마지막 날 "안녕~" 하고 사뿐히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