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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콴 Mar 14. 2018

우리는 지성(知性)의 시대를 살고 있을까

<지식인과 강적들> 톰 니콜스 지음 | 정혜윤 옮김

  NBA 스타 카이리 어빙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다. 그러니깐...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카이리는 오히려 사람들의 자각을 독려했다. "지구의 99%가 속고 있고, 스스로 연구해서 깨우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누구나가 카이리의 믿음에 조금 더 알아보면 논리가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지구는 평평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누구인지 물었지만 카이리 어빙은 누군지 밝히지 못했다

카이리어빙이 믿는 지구 (출처-clutchpoints.com)


 이른바 '평면지구(Flat Earth)'를 주장하는 지구평면설은 18세기 과학자 사무엘 로버텀이 주장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성경에서 세계를 '네모난 모퉁이'라고 언급한 부분을 믿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느 모델은 원반형이다?) 그 증거로 베드포드 강에서 높이 실험을 하였는데, 측량 결과 지구가 공 모양이라면 나와야 할 곡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주장하는 지구평면설이 사실이라고 하였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근거로 측량 자체가 틀렸다고 증명했다. 하지만 사무엘은 포기하지 않고 '지구는 둥글지 않다(Earth Not a Globe)'라는 이름의 430페이지에 달하는 책까지 써내며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다. 


 현재는 다니엘 셰턴이라는 사람이 '평면지구'를 주장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2009년 평평한 지구 학회가 재건되어 2012년 3월 기준으로 42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학회의 회원들은 예전의 이론을 대신하는 핵심적인 모델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 구성원마다 고유의 모델을 믿고 있다. (출처-위키피디아) 물론 과학계는 지구 평면설을 믿거나 주장하는 사람들을 유사 과학자 또는 음모론자로 취급하고 있다. 


검은색 띠지를 벗기면 디자인이 더 예뻐요? <전문가와 강적들>

 우리는 지성(知性)의 시대를 살고 있을까?  <전문가와 강적들>에서는 얄팍한 지식이나 정보로 무장한 ‘일반인’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전문 지식이 무시당하고 있는 요즘에 대해 말한다. 책은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되는 이유로 확증편향 고정관념, 일반화의 함정, 평등편향 같은 개인의 측면에서부터 최근 대학 교육의 하향화, 미디어의 역할 부재 등 사회적인 측면까지 알아본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때는 민주주의 사회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전문가와 일반인들의 간극은 포퓰리즘이나 기술관료주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고, 민주주의 파국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에 한국에는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사태가 사람들의 우려를 낳았다. 자연 치유로 병을 나았다는 경험을 서로 나누고, 예방 접종을 하지 않으면서 의도적으로 피했다. 지난 1세기 동안 유아 사망률을 혁명적으로 낮추게 했던 공동 면역체계를 무너지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현대 의학이 그동안 증거 기반으로 쌓아 올린 지식을 무시한 셈이지만, 여러 의사들의 지적에도 ‘안아키’ 회원들은 당당했다. 민주사회에서 자신들끼리 지식을 나누며 정보를 취사선택해 아이에게 최선의 치료를 하는 게 무엇이 잘못됐냐고 반문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연 치유 택할 때 따라오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 예방 접종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아이는 물론 다른 아이들까지 홍역, 수두, 천연두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아마도 ‘호환마마(천연두) 무섭다’라는 말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전문 지식의 불신에는 재앙이 따른다. 다수 지식인들이 무시로 일관한 논리들이 어느 누군가에게 채택되어 심각한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강적들>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를 든다. 1990년대 초 ‘에이즈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에이즈 원인이라는 의학계의 합의를 부정하는 주장을 내놨다. 에이즈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영양실조나 허약한 건강상태 같은 다른 요인 때문에 걸린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인들은 증거나 근거는 없다며 믿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보 음베키 대통령에게 갔을 때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에이즈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HIV 전염을 막기 위한 다양한 원조를 거부했다. 그 후 남아공에서는 30만 명 이상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고 3만 5000명의 아이가 HIV 양성반응을 보였다.  

만델라에 이어 타보 음베키 대통령은 민간요법으로 치료가능하다고 믿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 전문가도, 일반인도, 언론인도, 정치인도 모두 틀릴 수 있다. 심지어 <전문가와 강적들>에서는 노벨 화학상과 평화상을 수상한 과학자도 평생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이야기를 해준다. 나아가 책에서는 전문가, 일반인, 언론인, 과학자들이 어떻게 틀리고 무지했는지 친절히 알려줬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수십 년간 일관되게 합의한 사실들은 믿어야 하지 않을까. 


 NBA 스타 카이리 어빙의 지구평면론은 우려스럽다. 현대 과학에 대한 불신이자 무지에 대한 당당함 때문이다. 카이리 어빙의 동료들은 그가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지구본을 돌리며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해?’라고 물으며 장난쳤다. 그는 동료 쪽으로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무시한 채 기자회견을 이어 나갔다. 모든 사람들이 그 장면을 유쾌하게 지켜봤지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를 생각한다면 함께 웃지 못하겠다. 우리는 과학이 발전하고 있고,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인터넷으로 자가 진단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본 약을 의사에게 처방하라고 해본 적 없나? 일반인들은 전문가의 전문 지식을 거부하고, 마치 지성을 뛰어넘는 혁명가인 것처럼 행동하고,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정말 지성의 시대를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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