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상범매직'
원수(怨讐)에서 귀인이 되었다. 이상범 감독은 이번 시즌 DB에 부임하며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DB 구단에게는 원수 같은 존재였다. 과거 DB의 통합 챔피언을 가로막은 장본인이 바로 이상범 감독이었기때문이다.
- 동부의 원수, DB 감독 이상범
2011-2012 시즌 동부(현 DB)는 김주성-윤호영-로드 벤슨을 중심으로 동부산성을 쌓은 해였다. 동부는 2위 안양 KGC를 8 게임 차로 따돌리며 극강의 모습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거뒀다. 기동력이 뛰어난 장신 선수들을 활용해 수비 농구를 펼치며 상대를 서서히 질식시켰다. 2011-2012년 KBL 리그 평균 실점이 76점이었지만 동부의 평균 시즌 실점은 67점이었다. 상대에게 리그 평균보다 9점이나 덜 준 것이다. 당시 동부의 평균 득점은 리그 10개 팀 중 7위였으니 동부의 확실한 색깔은 공격보다 수비였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던 KGC 인삼공사는 젊은 팀이었다. 오세근, 양희종, 박찬희(현 전자랜드), 김태술(현 삼성), 이정현(현 KCC)등으로 지금은 국가대표 주축이지만 당시에는 프로 1~2년 차 혹은 상무에서 막 복귀한 젊은 선수들이었다. 잠재력이 컸고, 빠르고, 폭발력 있었으며 때로는 끈끈했다. 게다가 잘생긴 외모로 이른바 '인삼신기'(KGC인삼+동방신기)라 불리며 3년 만에 개막전에 매진을 기록하고, 역대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했었다. 그러나 KGC는 여느 젊음이 그러하듯 불안한 팀이었다. 잘하다가도 갑자기 졸전을 했다. 크게 이기고 있다가 역전패를 당해 이상범 감독은 팬들에게 사과문까지 올려야 했었다. 게다가 정규리그에서 동부에게 정말 약했다. 동부의 주축 멤버인 로드 벤슨이 빠진 경기에서도 무기력하게 패배했고, 한 경기에서는 41 득점을 기록하며 지독한 저 득점 경기로 DB에게 졌었다.
그러나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정규리그와 다르게 흘러갔다. 시즌 중 역대 한 경기 최소 득점 합산 기록(52-41)을 세운 팀답지 않게 1차전 전반전에만 45-44을 기록했다. 동부산성을 온전히 세우기 전에 KGC 인삼공사는 빠른 농구를 전개하며 다득점 경기를 유도했다. KGC는 전면 강압 수비와 체력과 힘을 바탕으로 강하게 몰아붙였다. 동부산성을 파울트러블로 몰아세우거나 심리전을 유도하며 흔들리게 했다. 그 결과, 이상범의 KGC는 4승 2패로 누르고 창단 첫 우승을 일궈냈다. SBS 시절부터 팀을 지켜온 이상범 감독의 첫 우승이었다. 이후에 이상범 감독은 2012년 런던올림픽 예선 국가대표 감독,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유재학 감독 밑에서 코치로 금메달을 획득한다. DB를 이기고 우승한 것이 이상범 감독 개인 커리어에는 큰 도약이었고, DB입장에서는 가장 전력이 좋았을 때 통합 우승을 놓치게 되는 안타까운 역사였다.
- 리빌딩한다면서 우승까지 하면 어떡해
2017-2018 시즌으로 돌아오자. 시즌 초부터 DB는 올 시즌 리빌딩하는 시즌으로 정했다. 동부산성의 핵심 멤버였던 김주성이 은퇴투어를 하게 됐고, 윤호영과 벤슨은 세월에 노쇠화 되고 있었다. 팀을 탈바꿈할 수 있는 전환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DB는 그 적임자로는 '인삼신기'를 키워낸 이상범 감독을 선택했다.
DB는 윤호영의 부상, 허웅의 상무 입대 등으로 약체로 분류되었다. 이상범 감독도 구단과 뜻을 맞춰 이번 시즌에 대대적인 리빌딩을 천명했다. 많이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잠재력 있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팀에게는 '힝~ 속았찌'가 되어 버렸다. 경기 초반 잠재력은 있으나 안정적이지 않는 선수들을 대거 기용했다. 후반 승부처에서는 노련한 김주성, 윤호영 같은 우승 멤버들을 출전시키며 승리를 챙겼다. 어린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면서도 승리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DB 우승 원동력을 '상범매직'이라고 했다. 상범 매직은 무엇일까? 숫자로 한 번 알아보자.
-상범 매직 1단계: 경험치 뿜뿜!
먼저, 시즌 전 리빌딩을 하겠다는 공약을 지켰다. 이상범 감독은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기용했다. 한 경기에 12명 선수가 출전 가능한데 DB는 평균 11.3명을 출전시켰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선수를 기용했다. 이상범 감독은 많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리그 평균은 10명이며, 평균에 촘촘하게 수렴하고 있는 것과 DB는 대조적이다.
DB는 5분 이상 출전한 선수 수가 리그에서 가장 많다. 이번 시즌 1군 엔트리에 들어온 선수 18명이다. 이상범 감독은 18명 모두에게 5분 이상 뛸 기회를 줬다. 신인 이우정은 20경기에서 평균 11분, 지난 시즌 지명된 최성모와 맹상훈에게 각각 16경기 평균 10분, 27경기에서 평균 7분을 뛰게 해줬다. 이상범 감독은 신인급 선수들에게 1쿼터 풀타임을 맡긴다. 신인급 선수들이 실수하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을 때까지 한 쿼터를 기다려준다. "실수한다고 선수를 빼면 그 선수는 다음에 위축된 플레이를 펼친다"는 것이 이상범 감독의 지론.
*KBL은 10분, 4쿼터제로 총 40분제
-상범 매직 2단계: 장거리 미사일을 장착한 신형 DB산성
이번 시즌 이상범 감독에게 선택받은 선수는 김태홍, 서민수이다. 김태홍과 서민수는 2016-17시즌에는 각각 한 경기 평균 4분, 6분을 뛰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두 선수다 평균 22분을 뛰며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한다. 김태홍은 경기 당 평균 6.9득점, 매 경기 3점슛 1개를 기록하며 올 시즌 기량발전상을 수상했다. 서민수는 평균 5.4득점, 1어시스트, 4리바운드를 기록한다.
이상범 감독은 동부산성을 장거리가 가능한 DB산성으로 수리했다. DB는 장신임에도 3점슛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센터, 포워드가 있기 때문이다. 서민수와 김태홍 외에도 이번 시즌 3점 슈터로 변신한 김주성, 준수한 슈팅 능력을 가진 윤호영까지 있다. DB산성은 벤슨을 제외하고 외곽슛이 가능하다. 이번 시즌 네 선수가 합작한 3점슛 성공은 159개로 DB가 올 시즌 3점슛 성공의 32%를 담당했다. 결과적으로 DB는 10개 구단 중에 경기당 9.1개로 가장 많은 3점슛을 성공한 구단이 됐다. 동시에 블록, 리바운드도 10개 구단 중 1위였다. 기존의 동부산성이 가지고 있던 높이에다가 장거리 미사일을 장착한 것이 바로 DB산성이다.
-상범 매직 3단계: DB의 승리 버튼! 디온테 버튼(Deonte Burton)
DB가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한 단어로 말한다면 '버튼'이다. 버튼은 올 시즌 외국선수 MVP, 올스타전 MVP를 타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192cm이지만 엄청난 탄력을 가지고 있다. 당초 DB에서는 파워포워드를 맡기려고 했을 정도로 힘이 장사다. 기술적으로도 KBL 수준을 넘어섰다.
이상범 감독은 버튼이 가지고 있는 공격생산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로 빅맨들을 상대 장신 수비를 외곽으로 유인한다. 상대 입장에서는 30%대 성공률을 가지고 있는 포워드들을 안 쫓아갈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상대 골밑은 넓어진다. 그 공간을 마음껏 헤집고 다니는 것이 바로 버튼의 역할이었다. 엠스플에서 정한 버튼 TOP10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버튼이 골대를 향하여 돌파해갈 때 DB의 포워드 센터진은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https://www.youtube.com/watch?v=yTuRXzPR8Oo) DB산성은 버튼을 활용해서 3점슛 기회를 찾는 것이다. 'DB산성'과 '버튼'의 유기적인 플레이가 상범매직'의 정체이다.
DB는 2017-2018시즌 통합챔피언을 노린다. 아직 상대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DB의 최대 약점은 버튼이다. 버튼이 경기장에 나오지 못할 때 DB는 허둥댔다. 해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강한 센터가 있는 팀이라면 수비적인 측면을 고려해 버튼 대신 206cm 로드 벤슨의 출전시간이 많아진다. 벤슨이 있을 때는 높이가 올라가지만 스피드가 떨어져 공격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DB는 이번 시즌 37승 17패를 기록했는데 KGC와 KCC에게만 3승 3패로 5할 승률을 기록했다. KCC의 하승진, KGC 데이비드 사이먼 같은 리그 정상급 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범 감독은 이들을 상대로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동부의 통합챔피언을 막았던 이상범 감독이 DB에게 통합챔피언을 안겨줄 수 있을까!
*글에서 의도적으로 두경민 선수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두경민 선수가 팬들을 저버렸듯이 팬에게도 선수를 잊을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건강상 불참에 불구하고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 지각을 했습니다. 덕분에 입담으로 시끄러워야 할 미디어데이는 냉랭하더군요. 팬들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면 그럴까요. 팬이 없는 농구선수는 그냥 농구 잘하는 개인일 뿐입니다. 한국 농구가 죽어가는 이유를 멀리서 찾지마세요. 당신처럼 팬들을 호구로 생각하는 선수들이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