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삼부자의 대학교 데이터 비교
1. 준우승팀에서 나온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MVP
서른넷의 허재는 여러모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97-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현대 걸리버는 이상민-조성원-추승균과 맥도웰을 필두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김영만과 김유택, 클리프 리드가 힘겹게 분전했지만 현대가 전력에서는 우위에 있었다. 허재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오른손등 부상으로 깁스 위에 테이핑을 두껍게 감았다. 의사는 ‘더 이상 충격이 가해지면 부러진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공을 다루는 감각에 방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혹자들은 전력을 숨기기 위한 속임수가 아니냐고 했지만 손등 부상으로 허재는 결정전 이후에 병원에서 입원을 하며 장기 치료를 받으며 진짜 부상을 증명했다. 5차전에서는 오른쪽 눈두덩이 찢어졌지만 다시 지혈을 하고 뛰었다.
허재는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단한 기록을 하나 꼽자면 준우승팀에서 나온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MVP이다. 이 기록은 우리보다 역사가 긴 미국에서도 단 한차례 있는 기록이다. 허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다방면의 활약을 보여줬다. 그는 당연히 그런 능력이 있는 선수였지만 34살의 적지 않은 나이, 손등 부상, 눈두덩 부상을 이겨내고 아래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허재는 대한민국 농구에서 상징적 인물이다. 대중은 허재를 그냥 농구를 잘했던 사람 중의 한 명으로 회상하지 않는다. 실력은 물론이고, 천재들이 흔히 가졌던 거만함과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을 함께 떠올린다. 허재가 전성기였던 농구대잔치 시절(84년~97년) 농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했다. (통산 득점 2위, 어시스트 1위, 스틸 1위, 리바운드 3위) 실력도 훌륭했지만 대중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스타성이었다. 승부처에서의 번뜩이는 천재성과 승리를 향한 집념은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캐릭터였다. 아직도 7080은 ‘허재’라는 이름에서 여전히 농구의 향기를 느낀다.
2. 허재와 두 아들
대한민국 농구계에 큰 축복이다. 허재의 두 아들도 농구를 한다. 아버지와 같이 외자로 이름을 지었다. 현재 상무에서 군 복무 중인 장남 허웅. 지난해 드래프트 1순위로 부산 KT 소닉붐에 입단한 허훈이다. 두 아들 다 동급생들 사이에서 군계일학의 실력을 드러내며 프로에 입단을 했다. 허재의 아들도 진로를 과연 허재 아들답게 정했다! 허재의 모교인 용산중, 용산고를 졸업한 두 아들은 당연히 아버지와 같이 중앙대로 갈 줄 알았지만 연대를 선택했다. 첫째 아들 허웅이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이유로 연세대에 입학한 것이다. 둘째 허훈도 마찬가지 이유로 연세대에 입학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들이다.
한 스포츠 매체에서 허재와 아들들을 불러 토크쇼를 진행했다. 아나운서가 '아버지에게서 가장 닮고 싶은 것을 하나만 꼽아달라'라고 했다. 허웅은 아버지가 클러치 상황에서의 *집중력을 꼽았다. 기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농구에서는 완벽했던 허재는 중요한 상황에서 기지를 발뤼하는 경기가 많았다. 이어진 질문에서 아버지에게 바라는 점으로는 '금주'를 꼽았다. **허재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음주 파동이 일자 협회에서 6개월 선수자격정지 및 국가대표 자격 영구 박탈 자격정지를 내렸다. 이후 또 한 번 허재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에서 또다시 무면허 음주 운전을 저질러 체포당했다.
허재의 두 아들은 장단점이 뚜렷하다. 첫째 허웅은 정확한 슈팅을 기반으로 한 슈터(Shooter)라면, 둘째 허훈은 빠른 돌파를 통해서 상대 진영을 휘저을 수 있는 슬래셔(Slasher)이다. 허웅은 어렸을 때 학교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로 농구를 늦게 시작했다. 아마추어 시절 까지만 하더라도 허웅보다는 탄탄한 기본기에다 빠른 스피드를 가진 허훈이 좀 더 기량이 좋다는 평을 받았지만 허웅은 2015-2016년 기량발전상을 수상하며 프로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대학 때보다 슛팅은 물론 기술의 완성도 높아졌고, 평균 이상의 스피드를 살린 풀업 점프슛을 장착했다. 둘째 허훈은 4학년이었던 마지막 대학농구리그에서는 부상으로 대학생활 중 가장 적은 11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장기인 돌파를 바탕으로 컨디션이 올라오면서 연세대를 챔피언으로 이끌고 자신은 MVP를 수상했다.
단점도 뚜렷하다. 작은 신장이다. 아버지보다 아들들이 키가 작다. NBA와 마찬가지로 국내도 점차 장신화되고 있는 환경이다. 아무리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더라도 185 이하의 신장을 가진 선수는 포인트 가드로 출전할 수밖에 없다. 줄곧 슈팅가드를 맡고, 패싱이나 시야에서 제한점이 있었던 허웅이 프로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었던 것도 이러한 환경 때문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비다. 현대 농구는 상성(相性)이 맞지 않는 선수들끼리 매치업을 만들어 공격을 한다. 예컨대, 빠른 선수가 느린 선수와 매치 업한다거나 키 큰 선수가 키 작은 선수와 매치 업하는 식이다. 이를 '미스매치(Miss Match)'라고 한다. 키가 작은 허웅과 허훈은 상대팀 입장에서는 미스매치 유발자가 되어 집중 공략당할 수도 있다. 앞으로 두 아들들이 한 팀에 소속될 수 있지만 한 코트에서 뛰는 모습은 보기 힘들지 않을까.
3. 허재 삼부자 대학교 데이터
*위에서 언급했듯이 3점슛 거리가 늘어난 데에 대한 기록 보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허재의 농구대잔치, 허웅과 허훈의 대학농구리그 기록을 참조했으며, 플레이오프는 제외했다. 삼부자가 각각 53경기를 뛰었다.
허웅과 허훈은 허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농구공을 잡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 덕을 봤다'는 식의 이야기, '아버지의 꼬리표가 따라다녀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둘 중에 어느 것이든 선수는 팀의 승리와 기량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기성 언론이 주로 '허재의 아들'에 열을 올리는 것에 비해 허웅과 허훈의 기량에 대해서 얼마나 소개했는지 의문이다. 2017년 10월에 막내아들 허훈이 프로에 데뷔하면서 온전히 대학교 기록들을 비교할 수 있어 살펴보려고 한다.
허재는 중앙대 유니폼을 입고 1984년부터 3년간 농구대잔치에 출전했다. 4학년이었던 1987년은 중앙대가 선수 부상을 이유로 농구대잔치 불참했기 때문에 4학년 때 기록은 없다. 표면적인 이유는 '부상'이었지만 지난해 판정에 불만을 품은 중앙대의 항의성 불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허재는 역대급 선수답게 신입생 때부터 18경기를 뛰면 평균 24득점을 올렸다. 특이한 점은 3점슛이다. 허재가 1학년 때에는 3점슛 룰이 없었지만 1984년 FIBA(국제농구연맹)에서 3점슛 룰을 개정하며 1985년 농구대잔치에서부터 국내에 도입됐다. 2010년 FIBA에서 3점슛 거리를 6.75m로 변경되기 전까지 6.25m로 3점슛 라인을 사용했다. 첫 해에 허재는 13경기에 출전해 3점슛을 60회 시도 중 22회 성공시켰다.(36.7%) 룰 적응이 되었는지 그다음 해에는 207회 시도 중 91회 성공시켰다.(44%) 시도가 늘었고, 성공률도 올리며 개정 룰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허웅과 허훈은 비슷한 스탯을 가지고 있으나 허훈이 더 높은 스탯을 기록했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허웅이 프로에서 적응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직 허훈이 치른 경기가 적어 비교하기 어렵지만 허웅은 1년 차 이후 롤을 확실히 부여받은 2년 차, 3년 차 프로농구에서 평균 득점 12점, 11.8점으로 대학에서 올렸던 스탯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허훈은 25경기를 치른 후 10점 이하의 평균 득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발목 부상으로 당분간은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러한 평은 지속될 것이다.
4. 슛은 허웅, 돌파는 허훈이라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허웅은 슈터 성격이 짙은 선수라면, 허훈은 슬래셔 타입의 선수이다. 하지만 대학기간 동안 허훈의 3점슛 성공률이 높았다.(35.3%/31.7%) 자유투 성공률도 허훈이 좋았다.(78.8%/75%) 그렇다면 두 선수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틀린 걸까?
MLB에 세이버메트릭스가 있다면 농구 계에 APBR메트릭스가 있다. 빌 제임스의 세이버메트릭스 광풍 이후 농구의 2차 스탯들도 상당히 발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APBR(Association for Professional Basketball Research)이 중심이 되었기에 이를 APBR메트릭스라 부른다. 야구에서 OPS 같은 수치를 농구에도 접목시킨 것인데 선수들의 득점, 리바운드 등의 서로 다른 지표를 합치고, 빼고, 나누고, 곱하면서 다른 의미 혹은 미시적이거나 거시적인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True Shooting Percentage(TS%)는 한 선수의 슈팅 능력을 측정한다. 코트에서 경기중 던지는 2점슛과 3점슛을 포함한 필드골 성공률에 경기가 정지된 뒤 던지는 자유투를 더해 보정한 것이다. 필드골 성공률과 3점슛 성공률과 자유투 성공률 등 다양한 슈팅에 관련된 성공률을 종합해서 평가하는 것보다 하나의 지표로 평가하는 직관적이며, 정확할 수 있다. 식은 다음과 같다.
TS% = (총 득점) / [2 * {야투시도+(0.44 * 자유투시도)}]
슈팅 관련 2차 스탯은 Effective Field Goal Percentage (eFG%)가 있다. 농구에서 자유투는 1점, 3점 라인 안에서 득점하면 2점, 3점 라인 밖에서 득점하면 3점으로 인정한다. 슛을 넣어도 어떤 위치에 있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따라서 점수의 가치가 변하는 것이다. eFG는 3점슛이 넣기 어렵고, 성공했을 때 보상이 크기 때문에 가중치를 줘서 계산한다. 앞에 언급한 TS% 슈팅 자체에 대한 스탯이라면, eFG는 경기에서 슈팅이 미치는 파급력을 고려한 스탯이다.
eFG = (야투+0.5X경기당 3점슛)/야투시도
2차 스탯으로 보정했을 경우 대학기간 동안 평균 eFG%는 허웅이 허훈보다 높게 나온다.(51%/47%) 허웅이 3점 슛 확률이 허훈보다 낮았지만 3점 슛 시도를 더 많이 했고 더 성공했기 때문에 가중치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허웅의 자유투 확률이 허훈보다 더 낮았음에도 자유투를 반영한 TS%도 허웅이 높았다. (56%/53%) 허웅이 자유투 시도와 성공 횟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점 성공률, 3점 성공률, 자유투 성공률 같은 1차 스탯을 절대적으로 비교한 것보다 스탯의 횟수와 가중치를 반영하면 2차 스탯을 생성해낼 때 정확한 비교가 가능했다. eFG%와 TS%에서 각각 4%와 3%차이가 최상위급 선수들을 분류해내고 성향과 선수 가치를 평가할 때는 큰 의미로 다가 올수도 있다.
5. 우리는 제2의 허재를 볼 수 있을까
허재와 두 아들을 대학교 데이터를 놓고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허재는 역대급 선수이고 모든 방면에서 수치들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아들은 아버지를 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냥 농구를 잘해야 한다!! 모든 방면에서 잘해야 하는데 굳이 뽑아보자면 '득점과 어시스트'를 늘릴 필요가 있다. 작은 키와 용병들 때문에 허재의 리바운드 기록을 넘기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허웅은 정확한 슈팅을 바탕으로 파생되는 공격기회를 어시스트로 만들어야 한다. 어시스트 스탯이 프로 1년 차보다 점점 좋아져 상무에서 입대하기 전인 16-17 시즌에는 경기당 3.7개를 기록했다.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허훈은 현재 꼴찌팀인 KT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해 보면서 적응하는 게 급선무다. 뛴 경기도 얼마되지 않아 수치를 높이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너무나 뒤처진 꼴찌팀 소속이니 부담 없이 자신의 능력을 펼쳤으면 좋겠다. 3년뒤에는 프로에서 평균 20득점과 7어시스트 정도면 제 2의 허재라고 불릴만하지 않을까! (막 지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