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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방위대

bgm : JP Saxe - Hey stupid, ILove you

by 민서

오징어 지킴이. ‘못생긴 남자친구를 지키려는 여자친구’를 뜻하는 말.


나는 지킴이를 넘어선 오징어 방위대다. 맨 처음 오징어 지킴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내 남자친구가 오징어라는 거야? 허 참. 어이없어.”라며 혀를 끌끌 찼다. 맞다. 심각한 콩깍지 말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오징어 방위대로 살아가는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당최 해결할 방안이 없다. 술자리. 그게 제일 싫다. 더군다나,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다 알지도 못하는데 그들과 그것도! 남녀가 뒤섞여 술을 마신 다라. 오랫동안 쌓아온 나의 유교적 관념에 의하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남자친구를 못 믿냐고? 믿는다. 믿어.. 다만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게 되었을 때, ‘취해서’ 그랬다는 변명을 듣고 싶지 않다.

이렇게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그는 수시로 연락을 남겨주었고,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서 술을 마시는 날에는 늦었더라도 꼭 내 얼굴을 보고 집에 가곤 했다. 그렇게 노력하는 걸 아니까, 애써 불안한 마음을 모른 척, 없는 척. 넘겼다. 그의 노력 덕분에, 나는 조금씩 안정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가끔은 자꾸 불안이 올라왔다. 소리 없이 뀐 방귀처럼, 소리도 없이 아주 지독하게.


어느 날은 그와 같이 술자리를 하게 됐다. 단과 대학이 함께하는 술자리였다. 서로 학과가 달라서 매번 다른 자리에 앉았기에, 우리에게는 술자리에서만 하는 특별한 풍습(?)이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윙크를 주고받는 풍습.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아무도 모르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윙크를 날리는 것만큼 짜릿한 순간은 없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은 갈 때쯤, 그의 밑에서 일하는 한 여자 후배가 내게 찾아왔다. 평소 애교 많은 성격 탓에 나와도 무척이나 친한 동생이었다. 내게 안겨서는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이 귀여워 천천히 들어주고 있었다. 그때, 고개를 돌리면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어김없이 내게 귀여운 윙크를 날렸고, 그 모습을 여자 후배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여자 후배는 ‘내가 뭘 본 거죠? 와 눈 씻고 싶다.’라고 말했다. 빵 터짐과 동시에, ‘어랏, 다른 사람 눈에는 오빠가 윙크하는 게 안 귀여워 보이는구나.’를 깨달았다. 이 글을 보고, 참 빨리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면, 할 말은 없다. (머쓱)

나는 오징어 지킴이었구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불현듯 그런 생각도 든다. 그가 다른 사람 눈에는 오징어라는 거. 다 안다. 근데 생각해 봐라. 우리 눈에 다 똑같이 생긴 그 오징어들도 지가 좋아하는 오징어를 찾아서 짝짓기 하지 않는가. 다 같은 오징어라도, 내 눈에 이 오징어가 제일 잘 생겨 보인다. 그뿐이다. 미친 게 아니냐고 한다면, 그 말에도 할 말은 없다. (히히) 그나저나, 이 콩깍지가 언제쯤 벗겨질까. 언제쯤 질투의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늘도 그런 고민으로 긴 밤의 공백을 다시 채운다. 마음의 저울에서 계속해 줄었다 늘었다 하는 불안정한 마음은 오늘도 나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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