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다섯 - 사진첩
6시간이 채 남지 않은 새 푸른 밤이었다. 이제 나도 어엿한 성인이다! 하며 얼마나 속으로 기뻐했는지 모른다. 우리 집은 해의 마지막 날을 함께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볼링을 치고, 맛있는 걸 먹으며 함께 카운트다운을 셌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봤고, 영화관에 있는 싸구려 포토 부스에서 사진을 찍었다. 통통한 젖살을 감추기 위해 양손으로 양 볼을 감싸고 한 컷. 다가오는 2020년을 기념해 각자 손으로 2와 0을 만들어 또 한 컷. 심심할 때 하기 좋은 브이를 하고 한 컷. 마지막은 못생긴 표정을 하고 찍어 마무리했다. 포즈를 다 한 뒤에는, 카메라 옆에 달린 뚱뚱한 펜을 잡고 글씨를 썼다. 2019 찍- 긋고 2020을 써야 하는데. 어이쿠 이런. 2019가 너무 익숙했는지, 또 2019를 써버렸다. ‘아 안돼!’를 외치는 순간, 싸구려 포토 부스는 시간이 지났다며 프린트를 시작해 댔다. 야박한 녀석. 우리는 그저 2019를 두 번 쓴 이미지 사진을 갖게 되어버렸다. 아쉬웠지만, 저화질로 인해 눈이 커 보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의 사진을 하나 얻게 되어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볼링장을 갔다. 내가 공을 치는 건지, 공이 나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연신 공을 굴렸다. 주체되지 않던 내 팔과 볼링공은 힘겨루기를 계속해서 해댔다. 볼링공을 탱탱볼처럼 튕기다가 천장이 깨질 뻔했고, 가족들의 놀란 토끼 눈을 목격했다. 다음날 팔이 후달달달 떨리는 경험을 맛볼 수 있었다.
운동 신경이 없는 나는, 그저 둥그런 볼링화가 마음에 들었고. 클럽이란 이런 곳일까? 싶었던 어둡고 빛나는 그 공간이 좋았다. 우리는 볼링장에서 나와 노래방으로 향했다. 나는 렛잇고를 열심히 불렀고, 엄마 아들은 신명 나게 랩을 했다. 나는 우리 엄마 친아들만큼 텐션을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을, 지금까지도 못 봤다.
노래방까지 달리고 돌아오는 길에 12시가 땡! 하고 울렸고, 가족 단톡방에 서로 덕담을 보냈다. 유난히 힘들었던 수험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나는 차에서 엉엉 울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새로 만든 주민등록증으로 술을 사보고 싶다고 말하며, 빨개진 코를 마스크 속에 감추고 술을 사러 나섰다.
가족끼리 술을 기울이며 그렇게 저물어갔던 12월의 한 겨울밤. 그날 저녁에 먹었던 음식이 마라탕이었다. 요즘 이게 유행이라며~? 하면서 도전했던 첫 마라탕. 마라의 맛 때문에 매콤하면서도 신선한 채소 덕분에 끝맛이 달콤하기도 했던 마라탕.
낯설면서도 익숙했던 맛. 20살의 맛이 그런 맛이었다. 그 20살의 밤을 끝으로 가족끼리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본 적이 없다.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신나서 쉬지 않고 재잘거리느라, 정신없이 뿜어 나오는 하얀 입김. 그 속에 한껏 올라가 있던 입꼬리들이 춤을 춰대던 밤. 마라탕을 먹고 빨개진 입을 보며 서로를 놀리던 그날의 맛. 그때는 그 하얀 밤과 맛이 되게 새롭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흐릿한 기억 한 편에 남겨져 있다. 밤과 맛, 그 한 글자에 담긴 그런 추억이. 그런 밤과 맛이. 내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