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림킴 -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카톡-. 띵-. 삐-.
내 친구는 핸드폰의 알림 소리를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내 핸드폰을 항상 무음으로 해놓는다. 벨소리는 더 싫단다. 어떤 연락이든 일단 알림이 울리면, 덩달아 심장도 울린다고. 쉽게 말해, 겁을 먹는다. 이 친구는 겁이 참 많은 친구다. 왜 그리 싫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온 세상을 담고 있는 작은 핸드폰이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손바닥만 한 핸드폰에 끝도 없이 그녀를 향해 적힌 욕들과 깎아내리거나 저격하는 글들을 본 뒤로부터.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이제는 그럴 일도 잘 없는데. 알림만 울리면 매번 심장이 뛰어서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그래서 알림을 다 꺼놓는단다. 그렇게 그는 흑백 소리 속에서 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내 연락을 확인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그런 일들이 있고 난 뒤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는 내가 들여다보지 않아도, 연락이 오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연락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하면 잘하는데, 그 속을 알기까지가 조금 걸린다. 그래도 난 그 친구가 좋다. 바로바로 연락이 오진 않아도, 한번 하는 연락에 많은 진심이 담겨있어서. 솔직해서 참 좋다. 그래서 내 안에 사는 겁도 많고 상처도 많은 그 친구를 위해 내가 소울메이트가 되어주기로 했다. 날아오는 상처를 피할 수도, 겁 많은 성격을 재빨리 바꾸기도 어려우니 말이다. 그렇다. 그 친구
는 바로 나다. 사실 처음부터 알림을 꺼버릴 생각은 없었다. 점점 알림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어져 꺼버렸을 뿐이다. 핸드폰으로 그렇게 당했는데도, 나는 그 작은 알림에 집착했다. 나는 나와 다른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나는 왜 하필 재미가 없는 성격일까. 좁고 깊은 관계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싫었다. 주변에 이 사람 저 사람 아는 사람이 많고, 발도 넓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연락이 많이 오면, 그만큼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니 왠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나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니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우울했다. 카톡-. 카톡-. 알림이 자주 울리는 친구의 핸드폰이 부러웠으며, 알림 기능을 상실하기 직전인 내 핸드폰에게 미안했다.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을 들고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을 보면,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연락이 오면 지레 겁부터 먹을 거면서도, 여러 개 떠 있는 알림 수를 보면 뿌듯했다. 점점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를 찾는 알림을 세기 시작했고, 광고든 사람이든 뭐가 됐든 얼마나 쌓이는지가 중요해졌다. 내용보다 양에 더 초점을 맞췄다. 카톡 알림 999+를 만들기 위해, 여러 웹사이트에 가입해 광고 문자를 늘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처사다. 그때는 그게 필요했다. 그렇게라도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다. 알림이 울리면, 기뻤지만 겁을 먹었다. 알림 수가 하나 더 추가되었을 테니, 내 존재를 확인받아 기뻤고. 하지만 그게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없으니, 겁을 먹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꼴이 참 우스웠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게 참 필요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어차피 듣지도 못했을 테니. 차라리 오랜 시간 멍청하게 살아본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보낸 마지막 카톡이 언제인지 찾았을 때, 깨달았다. 수많은 광고 속에서도 내 옆에 있어 주려 했던 소중한 이들마저도 잃어버렸구나. 나를 좋아하던 사람,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을 다 놓쳐버렸다. 사실, 그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지 확인받고 싶었던 것뿐인데. 처음에 어떻게 연락을 보내고 어떻게 친구가 되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다. 어쩌면, 그 방법은 처음부터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먼저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림을 껐다. 빨간 숫자가 보이지 않게끔. 모든 알림을 다 껐다.
서서히 집착이 사라져 갔고, 핸드폰과 조금 거리를 두었다. 숫자가 아니어도 내 존재를 확인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갔고, 핸드폰과 조금 더 거리를 두었다. 주말에는 핸드폰을 두고 외출할 수 있을 만큼, 과한 집착에서 벗어났다. 요즘엔 핸드폰과 건강하게 가까워지려고 노력 중이다. 중요한 알림을 제외한 모든 알림은 꺼놓고, 뜨는 알림에 바로바로 답장하지 않는다. 드디어 흑백 소리의 세상에서 한 발자국 나왔다. 세상의 색깔에 귀를 기울이고 겁먹은 마음을 조금 진정시킨 뒤, 내가 괜찮은지 물어본다. 어떤 내용이어도 읽을 수 있겠는지. 괜찮다면, 그때 읽는다. 진정한 내 친구는 나라서. 나밖에 없어서. 제일 먼저 물어봐 줘야 한다. 괜찮냐고.
띠링-
-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