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이트 타이거>
(영화를 시청하신 뒤에, 읽어보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이 문장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영화의 막이 내리고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졌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증오하는 척 사랑하는 걸까, 사랑하는 척 증오하는 걸까.’
증오와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반대의 감정이지만, 꽤 쉽게 함께 발현된다. 영화가 끝난 뒤, 여러 방면에서 해소되지 않은 불편함이 느껴졌다. 여성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그린 장면들이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속과 핑키 마담을 보면서 ‘제발, 너희만큼은 타락하지 마라.’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들도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허망한 느낌이 몰아쳤던 것 같다. 뇌물을 주는 것도, 교통사고의 가해자를 발람에게 뒤집어씌울 때도, 죄책감을 느끼는 듯 보인다. 그러나, 끝내 그도 자신의 맛에 맞는 사람을 다시 채용하고, 그저 ‘대체’하는 것으로서 발람을 생각한다는 것에 있어, 인도의 계급적 문제가 굉장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람’은 악인일까 선인일까. 자신이 당한 모욕과 고통을 흡수해, 자신의 손 끝으로 타인에게 표출한다. 이 점이 참 안타까웠다. 그는 자신이 섬겼던 주인처럼 행동하지 않겠다며, 새로운 회사를 창설하지만, ‘아속’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 과연 발람은 아속을 증오하는 척 사랑한 걸까, 사랑하는 척 증오한 걸까.
증오와 사랑. 이러한 양가감정은 가족과의 관계, 아속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먼저, 가족과의 관계에서 발람은 ‘사랑하는 척 증오’했다고 생각한다. 출세에 있어 자기 발목을 잡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발람은 ‘외면’을 택한다. 가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음에도, 그들을 찾아가지 않는다. 최근 방영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가족이 제일 큰 피해자’라는 대사가 나온다. 발람에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자신을 옭아매는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 발람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아주 극히 드물다. 가족이기에, 가족이라서 그는 그들의 곁에 머물렀던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죽음 외에 아속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족의 죽음은 외면하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만, 아속은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며 그가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개인적으로 발람은 아속과의 관계에서 ‘증오하는 척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정신의학자 ‘레온 조셉 사울’에 의하면, 우리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양육자의 도움만으로 살 수 있기에 의존적인 사랑의 욕구를 갈구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양육자가 자기 욕구보다 덜 충족시켜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본능적으로 좌절 속에서 강렬한 적개심이 발달하게 된다고 말한다. 발람의 사랑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것만큼이나 굉장히 의존적인 사랑이다. 발람은 아버지 이외의 가족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다.
이러한 사랑의 결핍이 클 경우, 우울, 불안, 자기 정체성의 불확립 등의 상태가 동반된다. 발람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고 판단된다. 정리하자면, 발람은 아속에게 가족보다 더 강한 친밀함을 느끼게 되고, 이에 주인의 사랑을 갈구함과 동시에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거나 어긋날 때, 굉장한 적개심과 거부 욕구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거대한 적개심의 정도가 도를 지나쳐 결국 살인이라는 끝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보면, ‘애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아속에게 발람이 어떤 존재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발람에게 아속은 애증의 관계였다. 발람이 자기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기 독립적으로 살아감에 따라 의존적으로 사랑을 받아야 하는 상대의 필요성이 떨어지면서 끝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더불어 너무나도 증오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뽑으라면, 당연코 발람이 아속을 죽이는 장면을 택할 것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그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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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 민서입니다.
이번 주는 시험 기간으로 인해, 에세이를 쓰기가 어려워 영화 비평으로 대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제 글에 공감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그럼 부디, 좋은 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