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다니엘 - 은방울
(영화를 시청하신 뒤에, 읽어보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수요일 밤. 1시 20분. 넷플릭스에 들어갔다. 가장 아끼는 영화 제목을 치고 한참을 고민했다. 영화를 볼까. 말까. 사실 이 고민의 결말은 항상 정해져 있다. 결국 볼 거면서, 누를 거면서 나는 자주 고민하곤 했다. 벌써 네 번째로 보는 영화다. 소설 ‘칠월과 안생’을 원작으로 개봉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가장 사랑하기에 가장, 보기 두려운 영화였다. 적적한 내레이션 후에 울려 퍼지는 나의 울음소리가 이 영화를 더 슬프게 만들었달까. 이 에세이를 쓰기까지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한번 보고 나면, 그렇게 여운이 오래간다. 인생 영화라는 게, 사람마다 다양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겠지만. 나에게 있어 인생 영화를 결정짓는 건 ‘여운의 깊이’이다.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아파하고 힘들어한 영화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행복하고 재밌는 영화는 잠깐의 돌풍과 함께 치고 들어온 파도처럼 부서지고 말지만, 여운이 머물고 간 자리에 치고 들어오는 파도는 아주 오랫동안 잔잔하고도 적적하게 나의 바다를 적신다.
칠월과 안생은 서로 이름과 다른 삶을 산다. 만물이 싱그럽게 빛을 발하는 칠월. 누구보다 빛날 것 같은 이름 뒤에, 칠월은 안정된 삶을 살아낸다. 안생은 ‘安生’ 편안한 삶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임에도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살아낸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처럼 살아가는 둘. 결국, 서로의 이름은 자신이 가진 결여를 표현한다. 영화를 보고 한참을 아프고 난 뒤에 영화 해석을 찾아봤고, 가장 맘에 드는 해석을 찾아냈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이름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칠월과 안생이 어쩌면 한 사람의 내면을 극단으로 그려낸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해석이었다. 해석을 보고 다시 영화를 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내적 갈등이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이게 된다.
나는 칠월과 안생 중에 어떤 캐릭터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마도 나는 칠월처럼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안정된 삶의 반대말은 과연 무엇일까. 불안정한 삶? 안정된 삶이라고 해서 행복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불안정한 삶이라고 해서 행복할 수 없는가. 삶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분리해 내는 방법은 지금 닥친 현실의 반대말을 찾아 감정을 덧붙여 보는 것이다. ‘괴로운 삶을 산다고 불행한 건’ 아닌 것처럼, 단지 ‘좀 많이 힘들 뿐’이라는 말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내 안의 칠월과 안생을 찾아낸다. 칠월의 모습처럼 살아가고 있다면, 숨어있는 안생에게 위로를. 안생의 모습처럼 살아가고 있을 땐, 울고 있을 칠월에게 손을 건넨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둥지에서 날아오른 칠월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뛰어내리기 전에, 어디든 갈 수 있다고 격려하는 안생이 되고 싶다.
나의, 안생에게
안생, 세상에 뛰어들 열정이 너와 함께 사라졌나 봐. 해볼 수 있는 건 해봐야지. 그게 내 신념이었는데. 네가 사라지고 난 뒤로 나는 새로운 도전이 무섭고 두려워졌나 봐. 다들 나보고 대단하다고 말하기도, 잘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사실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 늘 무섭고 어려워. 이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네가 옆에 있었더라면, 내게 모든 해보라고 했겠지? 인생은 짧으니까. 그 짧은 인생에서 네가 옆에 없어 참 슬퍼. 보고 싶어, 안생.
나의, 칠월에게
칠월, 잘 지내고 있어? 난 요즘 무척이나 두려워. 자유로운 삶이 참 재밌었는데 말이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자주 놓이면, 이겨낼 힘이 생길 줄 알았는데.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아서. 무서워.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지겨워. 한결같았던 너의 그 품이 그리워. 27살이 되려면, 이제 4년밖에 남지 않았어. 시간 참 빠르다. 4년밖에 남지 않은 그 시간 동안 너와 함께이고 싶다. 보고 싶어, 칠월.
숨어있을 혹은 울고 있을 내게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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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소울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