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나디 - 그 애가 떠난 밤에
얼마 전에, 인스타에 한 장의 케이크 사진이 떴다. 사랑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홀로 보내는 몇 주년 축하 케이크였다. 폭신폭신한 하얀 생크림이 잔뜩 올라가 식탁을 빛내고 있는 케이크와 달리, 내 마음은 자꾸 먹먹해졌다. 1주년, 2주년. 생각해 보니, 몇 주년 기념일은 누구의 생일도 아니고 모두가 즐겨 챙기는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서로 전혀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만난 첫날을 기념하는 날이니까. 두 사람만 알고, 두 사람만 챙길 수 있는, 그런 특별한 날이었다. 그러나, 이 말인즉슨 그날을 기억하는 두 사람이 없으면 한순간에 그저 흘러가는 날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특별하기도 허무하기도 한 오묘한 날이랄까. 이 세상에서 특별한 날을 나 혼자만 기억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혼자 남겨진 날에, 혼자 먹는 케이크의 맛은 얼마나 먹먹할까.
훈과 나는 나란히 누워 죽음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픈 미래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하늘로 가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만약 누구 한 명이 아프게 되면 어떡하지. 이건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덜 아픈 미래이지 않을까.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 서로의 미래를 생각하며 던지는 수많은 질문이었다. 혼자 남겨질 누군가를 위해 남기는 수많은 걱정이었다.
우리는 아파할 기간을 정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가 좋을까. 우린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가 죽고 나면, 너무 힘들어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그가 죽고 나서, 일상에 돌아가는 게 가능이나 할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숨 막히는 감정일 것 같아, 감히 생각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오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조금 이기적인 마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물들어 살아간 나날들이 참 예뻤지만. 혼자 짊어지는 물든 마음은 빨아도 빨아지지 않는 얼룩처럼 잊히지 않을 테니까.
오랜 이야기 끝에 우리는 숫자 3을 기준으로 잡았다. 울다 지쳐 잠이 들고, 밥이 넘어가지 않아도 딱 3일만. 3일만 엉망으로 살아도 서로 이해해 주자. 그리고 4일째부터는 밥이라도 잘 챙겨 먹자고 했다. 그리고 딱 3년만 아파하기로 했다. 청승맞게 같이 갔던 길을 걸어가면서 울기도 해 보고, 혼자 기념일도 챙겨보고, 사진도 꺼내 보고, 편지도 쓰고. 그렇게 애도의 시간을 갖자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은 더 단단해진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했다. 멋있게 단단한 사람이 되자고 말했지만, 이미 나는 울음에 못 이겨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지 오래였다. 상상만 해도 너무 아픈 일이었다. 서로가 가장 소중하기에, 서로에게 가장 아픈 추억일 될 수밖에 없으니. 그 슬픔은 알 수 없는 슬픔이었다.
장례식장에서는 서로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기로 했다. 나는 안예은의 ‘상사화’를 꼽았다. 평소 좋아하던 노래였으니까, 잠들어서 듣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틀어줄 노래를 들었다.
기다리던 봄이 오고 있는데
이리 나를 떠나오
긴긴 겨울이 모두 지났는데
왜 나를 떠나가오
아주 긴 겨울을 기다려도 함께 보낼 수 있는 봄은 다시 오지 않으니. 아무리 버텨봐도 함께할 수 없으니. 우리 둘 다 봄을 참 좋아하는데, 봄이 기다려지지 않을 것 같았다. 노래가 끝나자 그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눈물 한 방울 짜기가 어렵기로 소문난 그의 눈에서 또르르 슬픔이 흘렀다. 울음을 머금은 눈을 보고 깨달았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짧게 살다 가게 되더라도 이런 사람이랑 함께해서 후회는 없겠다.
그날 우리는 서로의 아픔에 오열하고, 슬픈 노래를 열창하고, 사랑했다. 그리고 함께하는 매일매일을 소중히 생각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에도, 서로의 슬픔을 나눴던 이 밤을 기억하며 이겨내자고.
부디, 오래 아파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디, 서로를 잊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