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서 Sep 03. 2023

흑임자, 넌 내 임자

bgm : 최유리 - 이름


 자칭 할망구. 난 할매 입맛을 가지고 있다. 꾸덕하고 달콤한 초콜릿케이크와 앙금이 들어가 담백하고 쫄깃한 떡케이크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떡케이크를 선택할 것이다. 초코.. 프라푸치노? 인가 뭐시기 보다 찜질방에서 대충 섞어서 마실 때 목이 턱턱 막히는 미숫가루가 더 좋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추구하는 나는 어딜 가나 할망구 입맛이라는 말을 듣곤 했다.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도, 흑임자 맛, 인절미 맛, 팥 맛. 고소함과 달콤함이 함께할 때 맛볼 수 있는 구수한 그 맛이 참 좋다. 밖에 나가서 초콜릿을 싫어한다고 말하면, 다들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곤 했는데. 요즘에는 아주 든든한 할아범이 생겼다.


 그와 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가면 무조건 비슷한 걸 골랐다. 오늘은 좀 상큼한 아이스크림이 땡긴다 싶으면! 폴X포 매실 맛을 집어 함께 나눠 먹었다. 와그작 와그작 씹으면서 노을을 바라보았다. 걸으면 걸을수록 아이스크림은 녹고, 노을도 점점 어두운 밤에 녹아들어 갔다. 어둑해진 밤, 그와 함께 걸을 때면 마음껏 행복한 상상을 했다.


 “오빠, 나는 있지. 오빠랑 같이 살면 이렇게 밤마다 산책을 나올 거야. 아 그래, 결혼하고 나서 함께 보내는 주말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자자 일단 들어봐. 우리는 평소에도 7시쯤 일어나니까 주말에는 늦잠 잔다 치고 한 9-10시쯤 슬쩍 일어나. 그런 다음에 뭐 간단하게 토스트 혹은 브뤈치를 즐기는 거지. 그런 다음에 1시 2시쯤 되면 서로 가장 좋아하는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가. 그때쯤 되면 내가 봤을 때, 우리 성격상 단골 카페 하나쯤은 꼭 있다? 집 주변에 그런 곳이 있어 이제. 약간 뭐 알지? 햇빛이 촤아~ 들어오는 카페.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함께 즐길 뭐 디저트 하나 정도~? 먹으면서 좋아하는 책도 보고, 서로 좋아하는 관심사도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낼 거야. 그러다 보면 한 뭐 5시쯤? 이제 슬슬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저녁에 뭘 먹을지 정하고, 집 오는 길에 있는 마트에 들러서 같이 장을 보는 거지. 집 도착해서는 같이 요리하면서 저녁밥을 준비할 거야. 당연히 우리가 한 거니까 맛있게 먹겠지? 그런 다음 이렇게 산책하면서 아이스크림 하나 까먹는 거지. 자기 전에는 오늘 어떤 게 좋았는지 묻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잠자리에 들 거야. 어때? 어때? 괜찮지!”


 그는 쫑알대는 나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는 대답했다.


“난 민서라면 다 좋아”


 그는,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항상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누군가에게는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 내게는 그 어떤 말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섣부르게 의심하며 사랑을 확인하려고 애를 썼던 날들이 지나가고 나니 깨달았다. 그의 마음 끝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는 걸.


‘민서한테 잘 어울리겠다.’

‘민서가 좋아하겠다.’

‘민서랑 다시 와야겠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함께 있을 때도. 그의 머리말에는 언제나 내 이름이 먼저 나왔다. 언제든 어디서든 내가 먼저인 사람이구나. 말로 표현하는 게 조금은 미숙해도 괜찮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은, 이렇게 행동으로 나오기 마련이니까. 행동만 봐도 너는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하니까. 이런 분명함을 주는 그대가 좋다. 우린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을 만들어 먹고,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흑임자 맛 아이스크림과 매실 맛 아이스크림을 골라 달콤하게 입을 축이며 걸었다. 흑임자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며 그가 말했다.


“이건 흑임자, 넌 내 임자.”

“풉”


 되지도 않는 아재 개그에 무심코 웃음이 터져버린 게 조금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이런 작은 순간에도 내게 사랑을 고백하는 너의 모습이 꽤 귀엽다. 아무래도 난, 고소하고 달콤한 너랑 우리가 할멈, 할아범이 되는 날까지 함께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케이크와 숫자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