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서 Sep 17. 2023

포기가 배추 셀 때만 필요한가요?

bgm : 디오 - 괜찮아도 괜찮아

 

 아직 몇십 년밖에 안 살았는데, 왜 이리도 고단한 일이 많은 것 같은지. 앞으로 살날이 까마득한데. 벌써 눈앞이 캄캄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머리를 일단 쥐어짜 봅니다. 사실 쥐어짜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경험해 본 일보다 시도해 볼 일이 더 많은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쥐어뜯어봤자 제 두피만 아플 뿐이죠. 그렇다면 한번 고민이라도 해보겠습니다. 자. 제가 여기서 포기하면, 내일은 오늘 못한 것까지 두 배로 해야겠죠? 근데 또 잠은 오래 잘 수 있을 거 아닙니까? 7시간이나 잘 수 있는데. 포기해도 꽤 괜찮은 거 아닌가요? (...) 안된다고요? 그렇죠? 아무래도 안 되겠죠? 하긴 해야겠죠…? 일단, 마저 공부하러 가보겠습니다.

.

.

.

 하.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공부가 안 되는 날인 것 같습니다. 앗! 제가 점심도 건너뛰고 공부해서 그런 걸까요? 힘이 부족해서?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제 뱃살은 너무 솔직하게 나와 있는걸요. 그렇다면, 정녕 제 뱃속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요.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오늘 공부 안 하면 내일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요? 맞습니다. 공부해야 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려면 공부해야죠. 할 겁니다…. 그러면 다시 공부하러 가보겠습니다.

.

.

.

.

 포기합니다. 포기요. 집중도 안 되고, 앉아도 딴생각만 하게 되는 거면. 오늘 제 머리는 공부할 생각이 없는 거 아닐까요? 지금까지 공부하느라 고생만 한 제 머리에게 조금이라도 휴가를 좀 내줘야겠습니다. 얼른 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누워야겠어요. 오늘 하루 안 한다고 달라질까요? 네? 달라질 거라고요…? 그래요. 그럼 하던 곳이라도 마저 하고 짐을 싸야겠어요. 잠시만요.

.

.

 자! 다 끝났습니다. 이제 진짜 집에 가야겠어요. 네? 왜 포기를 하고 그러냐고요? 포기가 하고 싶으니까요. 포기하는 것도 진짜 용기거든요? 자 생각해 보세요. 포기를 안 했으면, 용기를 가져볼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잠시 멈춰 서야,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생기는 거죠. 그래야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또 도전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어쩌면 포기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어요. 멈춤이 때론 도움이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나’를 위해서 한번 쉬어 가야겠어요. 결국, 다시 시도하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누가 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남들이 아무리 좋은 말, 나쁜 말 해가며 조언해 주고, 길을 알려준다고 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내가 견뎌야 하는 과정이니까요. 어느 하나 내 멋대로 하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오늘은 저의 편을 들어줘야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던, 제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전 오늘 포기합니다.


내일의 용기를 위해.

그리고 저의 행복을 위해.


작가의 이전글 흑임자, 넌 내 임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