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검정치마 - Everything
비눗방울 같다. 너무 투명하고 맑아서, 속이 훤히 보이니까. 너는 그런 나를 휘휘 저어, 크게 안아 올린다. 유리막처럼 얇은 내 마음에 후 바람을 불면, 동그랗고 예쁜 비눗방울이 완성된다. 비눗방울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여행을 시작한다.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는 비눗방울은 오색빛깔로 빛난다. 유리구슬처럼 동그랗고 반짝인다. 모든 마음을 비춰줄 만큼 투명한 비눗방울은 훨훨 날았다. 그러다. 톡. 터진다. 작은 힘에도 이기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사라진 비눗방울에게는 어떤 기억이 오래 남았을까. 동그란 모양이 생겼을 때, 여행을 시작했을 때, 여행이 끝나 터져버렸을 때. 모든 비눗방울이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 비눗방울은 터져 사라져 버린 그 시간을 기억한다. 동그란 모양이 생겼을 때는, 아마 환호를 들었겠지. 신기했을 테니까. 여행을 시작했을 때, 비눗방울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했겠지. 아마 비눗방울도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을 거다. 온 세상의 빛을 담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뿌듯했을까. 그러다 여행이 끝나고 터져버린 순간. 비눗방울은 놀랐을 거다. 이렇게 빨리 터져버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져 추락하는 자신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먼저, 초록 수풀 위로 떨어진 비눗방울은 몸을 눕히고 하늘을 바라봤을 거다. 푸르고 드높은 하늘. 그 하늘에는 시원한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또 다른 비눗방울이 있었겠지. 날아오른 여러 개의 비눗방울을 보면서, 비눗방울은 아마 울었을 거다. 자신의 존재는 쉽게 잊힐 거라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
오랜 시간이 지나, 수풀 위에 누워있던 비눗방울은 어둑한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밤의 저 하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러다 마음껏 하늘을 여행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빛나는 태양, 시원한 바람, 찬란한 웃음. 어? 찬란한 웃음. 그 웃음은 너의 것이었다.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후후 불어주던 그 미소. 얇디얇은 나를 둥글게 만들어 저 하늘 위로 날려준 건 너였으니까. 네가 아니었다면, 그 아름다운 것들을 다 볼 수 없었겠지. 너에 대한 소중함도 잠시, 비눗방울은 이내 너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너만 아니었다면, 비눗방울이 되지 않았을 테고. 추락해 떨어져 버린 자기 모습에 실망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 끝에 대한 두려움은 곧 원망이 되고, 원망은 이내 비눗방울을 집어삼킨다.
너에게는 작은 것도 크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5분이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도, 너랑 함께 걷는 거리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소박한 저녁도.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너의 그 소소함이 나를 버티게 한다. 너와 보내는 모든 시간은 내 불행의 보상이다. 불행해도, 너와 함께할 시간을 생각하며 견뎠다. 그래서. 그런 네가 무서웠다. 네가 없는 하루가 자꾸만 두려워지니까. 바람처럼 내게 불어온 너에게, 나는 어떠한 저항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수많은 비눗방울이 만들어졌다. 쫓아가도, 너의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비눗방울을 터트릴 수가 없다. 손끝에 닿을 듯, 말 듯한 비눗방울 하나가 저 먼 창공 위로 날아갔다. 온 힘을 다해 손을 뻗는다. 그 순간, 팡. 비눗방울이 터졌다. 오래갈 것 같았던 저 비눗방울이 터져버렸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터트리려 애쓰지 않아도, 비눗방울은 터진다. 그러니, 애쓰지 말아야겠다. 언젠가 이 마음은 터질 것이고, 터진 마음은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두려워하지 말자. 오늘도 수많은 비눗방울이 만들어졌다. 두려움을 담은 방울 하나. 사랑을 담은 방울 하나. 그렇게 두 개의 비눗방울이 저 하늘로 날아간다. 손이 닿지 않을 저 먼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