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들 돈 벌 때, 돈 써 가면서 공부하는 일이죠.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듭니다. 그런데도 선택한 이유는 단지 ‘재밌어서’.
음, 그래요. 재미를 느끼게 된 이유부터 한번 생각해 볼까요? 살면서 무언가에 ‘몰입’해보신 경험 있으신가요. 집중이 아닌 ‘몰입’이요. 집중과 몰입은 비슷한 듯 다른 단어인 것 같습니다. 집중은 무언가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는 뜻이라면, 몰입은 깊이 파고들거나 빠진다는 뜻이죠. 둘의 차이점은 뭐랄까. 집중은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몰입은 나도 모르게 하는 것 같달까요? 살면서, 집중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죠. ‘필요’에 의해, ‘강요’에 의해,,,‘생계(?)’를 위해? 등등. 제게 ‘집중’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감정으로만 다가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집중과 몰입은 또 하나의 차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피곤함’. 집중을 하고 나면, 눈도 피로하고 몸도 지치고 ‘피곤’함을 느끼곤 하는데요. 몰입은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래서 둘은 쓰이는 환경도 조금은 다른 것 같아요. ‘공부에 집중’한다는 표현은 사용하지만, ‘공부에 몰입’한다는 표현은,,,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에요, 몰입은 하고 싶어서 하는, 내 본연의 모습이 진심으로 추구하는 모습인 것 같아요. 마치 ‘감정에 몰입’하듯이 말이죠.
대학교에 들어가서 시작한 전공 공부는 마치 신세계였습니다. 그전에는 무작정 외우고, 쓰고 시험 보는 것에만 급급했다면. 대학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과목은 시험도 없고, 서로의 질문에 답을 달아주고, 토론하는 수업이었어요. 너무 재밌었습니다. 나의 질문이 새로운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시작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생각에 불꽃을 피워 조명을 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질문에 답을 남기기 위해, 논문을 사기도 하고 수십 개의 글을 읽기도 했습니다.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는 그저 ‘질문 한 개 올리거나 답글 달기’ 정도가 끝이었는데 말이죠. 누군가 시키지 않은 일에 스스로 ‘재미’를 느껴본 게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이 단어의 뜻은 무엇인지 찾아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하나하나 깨달을수록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 10시에 시작한 답글 달기는 새벽 4시가 돼서야 끝이 났습니다. ‘한 2시간 했겠지?’하는 생각으로 시계를 보면 6시간이 훌쩍 지나있던 것이죠. 그건 ‘몰입’이었습니다. 누군가 시키지 않았고, 누군가 쥐여주지 않은 나만이 시간을 내 뜻대로 사용한, 말 그대로의 ‘몰입’. 내 삶의 주체를 되찾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전공 공부가 너무너무, 너무. 온 마음을 다해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대학원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전공 공부는 재밌었는데, 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다양한 외국어 자격증. 한국어도 다 모르는데, 외국어라니. 게다가 두 개의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니. 이 세상에 5개 국어를 하는 사람도 8개 국어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 만난 물고기가 사막에 떨어진 느낌이었달까요?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 해본다. 최고가 되진 못해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보자!’가 제 신조였는데 말이죠. 쉽지 않더라고요. 포기해야 할 것들은 점점 많아지고, 쉴 새 없이 달려온 삶이 조금은 미련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 가족까지. 사실, 그들과의 만남을 포기하고 조금은 외로워지는 건 오히려 제게는 쉬웠던 것 같습니다. 더 무서운 건, ‘합격’에 대한 압박감과 ‘불합격’을 마주하는 자신이었죠. 대학교에 와서 좋아하는 공부만 하니, 다른 공부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실, 깨닫지 못했다기보다는 알고 싶지 않아 피했던 것 같아요. 모자란 제 모습과 마주하는 게 너무나도 싫었거든요. 사람은 모난 모습을 숨기기 위해 둥글둥글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나게 되죠. 모난 모습에 맞춰 모나게 변하면, 들킬 수가 없거든요. 그렇게 저는 완벽주의의 틀에 갇혀 살던 저를 마주했습니다. 아무리 부수려고 해도 깨지지 않았던 모난 틀이 외국어 몇 글자로 깨지게 된 것이죠.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나 모난 곳 하나쯤은 숨기고 사니까요.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던 찰나, 외국어 시험에 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거듭되는 실패는 다시금 불안을 일으키고, 합격에 대한 압박감은 나날이 심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제야, 대학원 진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둥, 대학원 가면 요즘 누가 돈 버냐는 둥. 그때는 ‘흥’을 외친 뒤, 바닥에 내리 꽂힌 화살에 등을 돌린 채 걸어갔었는데. 자꾸 불안하니까. 불안해지니까. 누군가 내뱉은 화살을 구태여 땅에서 끄집어내 마음에 내리꽂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불행을 선택한 거죠. 그렇게 해야, 조금은 덜 불안한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그 많은 화살을 마음에 꽂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도움이 되는 조언도 압박감으로 들려 마음에 꽂아놓고 아파하게 되더군요. 조금 쉴 때도 불안하고, 밥을 먹을 때도 불안하고, 웃고 떠들 때도 문득 불안함이 몰려왔습니다. 불안? 이놈 아주 웃기는 녀석입니다. 불안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마음은 몸을 아프게 합니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는 이비인후과, 한 주는 산부인과, 한 주는 안과, 다시 돌아 이비인후과. 한 달 내내, 병원을 돌아다니며 약을 달고 살게 되었습니다. 갈 때마다 들은 말은 ‘피로에 의해’라는 것. 피곤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때가 가장 위험한 거였습니다. 몸이 아파 공부를 손에서 놓게 되는 지경이 이르자, 정신을 차렸습니다. 나의 적은 ‘나’ 구나.
대학 교수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전공 공부가 재밌었던 건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파했을까. 빠르게 무언가가 되기 위해 달리니, 많은 걸 놓치게 된다는 것을. 미련한 저는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프면 재밌어서 하고 싶었던 일도 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게 얼마나 서럽고 서글픈 일이던지. 목표는 있어야 하지만, 그에 도달하기 위해 결과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과정을 겪었는가?’ 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죠.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과정과 경험. 그 값진 시간을 얼마나 즐기며 보내는지가 앞으로의 제 가까운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돈 많은 놈이 웃는 놈 못 이긴다’라는 말을 듣고는 어이없다며 웃었는데. 그 말이 진짜였습니다. 즐기면서 한 놈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길고 먼 여정이 되더라도 즐기는 놈이 되어봐야겠습니다. 이제는 누군가 태클을 걸어도 괜찮습니다. 꽂힌 화살이 많으니, 뽑아서 다 쏴버려야겠어요. 누가 뭐라고 하려거든, 여러분도 그들을 향해 쏴버리시길 바랍니다.
있는 힘껏 웃으면서, 슝.
이번 글은 평소의 글과는 달리,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한동안 글을 올리지 못해서,
조금이라도 적어보고자, 근황을 이야기해 보았어요.
잠깐의 위로를
잠깐의 위안을
얻으셨길 바랍니다.
금방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