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부터 자존감 지키는 법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반 아이들을 향해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후보는 단 3명. 나의 경쟁자는 2명이다. 앞선 친구들은 나와 달리 뭐 좀 부끄럼을 탄 것 같은데. 저런 저런~ 반장은 이제 나의 것이 되겠구먼. 그렇게 개표가 시작됐다. (...) 선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오늘 반장 선거 나갔다?”
“오~ 그래서?”
“1표 받았어….”
“(푸하하하) 에이~ 그래도 한 명이라도 너 뽑아준 게 어디야~”
“엄마, 그 1표… 그거 나야.”
그렇다. 반에서 나를 지지하는 사람이 한 명이었던 것이다. 바로 나.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신을 사랑할 줄 알다니. 나는 정말 자기애가 강한 아이였나 보다. 기특한 녀석, 하하하. (눈물) 나는 학창 시절 내내 반장을 해본 적이 없다. 더 솔직히 말하면, 못했다. 반장은 여러 명의 아이에게 선택받아야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난 선택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참 불행할 만도 한데, 나는 미련하게도 늘 도전했다. 1학기에 안 되면, 2학기에. 2학기가 안 되면 내년에. 한결같이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포기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고 싶으니까!’
반장 경력이 0인 상태로 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교 2학년. 학과에서 내년 학생회장을 뽑는다는 입후보자 공모가 떴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신청했다. 반장도 안 해본 내가 학생회장을 하냐며 다들 의아해했지만, 상관없었다. 왜냐? ‘하고 싶었으니까!’ 반장 이력은 없지만, 반장 선거 출마 이력만 12년 차에 다다른 경력직이었던 나는 그렇게 대학교에서 학생회장이 되었다. 그것도 같이 출마한 선배 오빠들을 제치고,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다. 반장 경험도 없이 덜컥 회장이라니!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무진장 잘했다. 학생회장으로 일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칭찬도 들었다.
성공 경험이 조금씩 쌓여서 더 단단한 자존감을 만든다고들 하는데. 음,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자존감은 자아 존중감이 아니던가. 성공 경험이 쌓일수록 더 큰 성공을 이룰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꼭 자존감을 만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그런 논리라면 내 자존감은 저기 지구 내부에 있는 맨틀쯤에 머물러있겠지. 사람이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는 건데. 그럴 때마다 자존감이 깎였다가~ 다시 또 붙었다가! 그러면 되겠는가? 자존감은 성공과 실패에 좌우되는 녀석이 아니다. 성공한 ‘나’도, 실패한 ‘나도’. 결국 다 같은 ‘나’니까. 자존감은 성공 경험이 아닌 ‘좋은’ 경험으로부터 형성된다. 거, 성공 좀 못하면 어떤가. 실패했어도 얻는 게 있었다면 그건 좋은 경험인 거다. 그러니,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에만 매달리지 말고, ‘좋은’ 경험을 쌓는 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화투에서 이긴 사람이 없어 판이 무산되었을 때 ‘나가리’라는 단어를 쓴다. 승패를 가릴 수 없는 무승부 상태인 거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남달리 실패한 인생 없고, 유달리 성공한 인생 없다.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면, 이번 판은 그냥 나가리였던 거다. 좋은 경험이었으니, 실패한 경험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결과가 마음에 안 들 때면, 외쳐보자. 그래봤자, 나가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