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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Apr 29. 2024

그냥 막 막국수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었다. 나는 강릉 음식 중에서 막국수를 제일 좋아한다. 막국수는 지금의 여행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강릉의 면류 음식들, 장칼국수나 해물짬뽕 보다 음식점 별 맛의 차이가 크다. 서로 간에 맛의 우위가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고 본다.


 막국수라 하면 보통은 '춘천'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나도 강릉에 살아보기 전에는 그랬었다. 막국수라 하면 춘천막국수 밖에 몰랐다. 국물 없이 비빔장에 비벼 먹는 새콤달콤한 막국수. 어딜 가나 족발과 세트를 이루고 있는 보편성 덕분에 춘천식 막국수가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사실 강원도에는 600여 개의 막국수 전문점이 있고 춘천, 원주, 강릉, 홍천, 평창 등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강릉에서도 몇 년간 십여 곳의 막국수집을 전전하다가 작년에야 드디어 한 곳에 정착했다. 요즘 내가 자주 찾는 곳은 살얼음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부드럽게 끊기는 메밀면, 약간의 김가루와 깨, 삶은 계란 반쪽이 들어있는 막국수를 만든다. 잘게 다져 우엉인지 절인 무인지 알 수 없는 고명도 들어있다. 전체적으로 심심하지만 사이사이 달달한 맛이 느껴지기 때문에 밑반찬으로 나오는 열무김치와 백김치를 곁들이면 맛의 밸런스가 좋다.


 막국수의 '막'이라는 명칭에는 여러 가지 유래가 붙어 있다.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준 토속음식답게 막국수의 정확한 시작점은 불분명하다. 겉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갈아 '거친'이라는 의미를 담은 막이 있는가 하면, 배가 고플 때 바로 만들어 먹은 음식이라는 '바로 지금'의 의미를 가진 막이 있다. 메밀면은 부드럽고 잘 끊겨서 '마구' 퍼 먹는 국수라는 의미의 막도 있었다. 국어사전에 나오는 '막'의 뜻이 10개가 넘으니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 게 막국수겠다.


 막국수는 이름의 뜻만큼 지역별, 가게별 맛의 차이도 크다. 겉껍질이 포함된 거친 메밀면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육수와 재료, 고명이 모두 제각각이다. 보통은 면과 육수가 따로 나오기 때문에 먹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물막국수나 비빔막국수로 변신시킬 수 있다. 테이블 위에는 식초, 설탕, 겨자, 들기름 같은 추가 재료가 준비되어 있어서 같은 식당 안의 손님들이지만 각자 다른 막국수를 먹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대중화된 냉면이 천편일률적인 맛으로 수렴해 가는 모습과 달리 막국수는 갈수록 맛의 개성이 다양해지는 것 같다.


  강원도에 가면 꼭 막국수를 먹어보길 추천한다. 지역마다 가게마다 변주가 재밌는 평영냉면처럼 다양한 곳에서 막국수를 맛보다 보면 자신만의 인생 막국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강릉에 오지 않았으면 평생 몰랐을 다양한 막국수의 맛. 내게는 아무 때나, 부담 없이, 그냥 막 먹기 좋은 음식이라 막국수다. 글을 쓰는 동안 또 막국수가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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