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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Apr 25. 2024

아침의 포기

 늦잠은 습관인 줄 알았다. 자영업자가 되고 점심시간이 지나 출근을 하게 되면서 늦잠이 늘었다. 회사에 다닐 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새벽 늦은 시간에 자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 6시간 이상은 자야지 하고 마음을 놓아버리면 아침 10시, 11시가 다되어서야 일어나게 된다.

 어젯밤에도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다가 새벽 3시가 넘어 침대에 누웠다. 11시 전에는 일어나야지 하고 편안히 잠들었는데 무슨 일인지 8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나 버렸다. 5시간 밖에 못 잤다는 생각에 다시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책이라도 봐야겠다는 마음에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거실로 나왔다. 하루 시작 루틴인 물 한잔과 유산균 챙겨 먹기를 실행했다. 냉장고 문 여는 소리에 깨어난 벼리와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앉았다. 옆에 있는 책꽂이에서 김겨울 작가의 <겨울의 언어>를 꺼내 읽었다.

 한 시간쯤 읽었을까. 밖을 보니 날씨가 좋아 보였다. 경포호 산책을 나갈까. 바다에 가서 누워 있을까. 마트에 가서 먹을 걸 사 올까. 무라카미처럼 아침에 글을 써볼까. 나는 아침에 할 수 있는 혹은 아침에 하기 좋은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출근까지 아직 4시간이 남아 있어서 뭐든 할 수 있었다.


 나는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웠다. 뒤척이며 몇 시냐고 묻더니, 산책을 가자는 말에 군말 없이 알았다고 했다. 아내는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도 착착 준비를 마쳤다. 늘 가던 경포호수 산책은 포기했다. 벚꽃축제 기간이라 차가 너무 많을 것 같았다.

 우리는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허균허난설헌 생가 옆으로 작은 소나무숲이 펼쳐져 있어 차분히 걷기 딱 좋은 곳. 때마침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어제 남산공원에서 밤 벚꽃을 실컷 만끽하고 왔지만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만난 벚꽃은 또다시 아름다웠다.

 어린이집 몇 곳에서 소풍을 나왔는지, 공원에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이쪽에서는 선생님과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이, 저쪽에는 나란히 벚꽃나무 아래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아이들이 있었다. 꽉 막힌 아파트 거실을 탈출해 초록 소나무숲 속에서 자유롭게 소리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산책을 마치고 초당의 유명한 순두부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 번씩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어서 궁금했던 곳이다. 작년에 TV프로그램에 나온 후 가장 핫한 순두부집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화요일에 점심시간도 전이라서 대기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핫플은 우리 입맛과는 맞지 않았다. 외식은 늘 모험인 법이고, 맛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은 해소했으니 됐다.

 집에 돌아오는 길. 달리는 자전거 앞 바구니에서 강아지를 봤다. 귀에 핑크색 포인트 염색을 한 흰색 강아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 번씩 주인은 잘 있는지 뒤돌아 보는 모습이 귀여웠다.

 

 12시. 출근준비 시간. 아내가 삿포로 여행에서 사 온 카페 오니얀마(ONIYANNMA)의 엘살바도르 원두로 첫 커피를 내렸다. 원두봉투에는 작은 잠자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는데, 오니얀마의 뜻이 장수잠자리라고 했다. 원두는 약배전 로스팅으로 과일향과 산미가 잘 느껴졌다. 지역에 없는 원두로 커피를 내리면 분명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어서, 우리는 여행을 가면 꼭 원두를 사 온다.


 늦잠은 습관이 아니라 포기였다. 어제의 나에게는 없었던 아침.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어도 아침은 남았다. 여유 있게 출근 준비를 하고 커피도 내렸다. 아침밥. 아침산책. 아침햇살. 상쾌한 아침공기. 건강하고 충만한 하루의 시작. 늦잠은 새벽에는 없는 아침만이 가진 소중한 이름들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내일도 이 아침을 맞아야지. 행복의 삼분의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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