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에서 아내와 점심을 먹었다. 한식과 양식이 섞인 퓨전 메뉴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브런치로 즐기기에는 양이 많은 구성 덕에 금방 배가 꽉 차버렸다.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오후가 아직 길었다. 우리는 소화를 시킬 겸 영진해변으로 갔다. 짧은 해변을 따라 생각도 목적도 없이 걸으며 바람을 맞았다. 안 그래도 작은 해변이 해마다 깎여 나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식후의 나른함과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카페 카르페디엠(Carpe diem)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이곳은 맛과 멋이 모두 무난 무난하다. 지금처럼 여름이 되면 모든 창을 활짝 열어두는 3층짜리 카페다. 바깥바람이 적당히 불어 들어오는 날에는 에어컨 없이도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오늘처럼 흐리고 바람이 강한 날은 별로다. 바람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크게 들린다. 목소리 큰 손님이라도 함께 있는 날은 혼비백산이다. 사정없이 들이치는 바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다 보면 해풍에 건조된 오징어가 된 기분이다.
아내는 장류진의 <연수>를 읽고 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글 대신 애를 쓰고 있다. 떡을 써는 어머니 앞에서 글을 쓰는 한석봉의 마음으로. 시, 소설, 에세이, 동화... 쓰고 싶은 건 많은데 쓸 수 있는 게 없다. 무거워야 할 엉덩이 대신 마음만 무겁다. 민망한 손이 자꾸 커피잔으로 향한다. 아내는 장류진이 놓아둔 글자 사이를 즐겁게 유영하고 있다.
카페에서 벽에 붙여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Carpe diem(지금을 즐겨라). 'Carpe'는 즐기다, 잡다, 사용하다, 이용하다의 뜻을 가졌다. 답답하고 막막한 지금을 즐긴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나는 사용을 해야겠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소리, 떠오르는 생각이 흩어지기 전에 타이핑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기도 무엇도 아닌 글을 써 내려갔다. 거북한 마음을 비워내려고 해변 대신 키보드 위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