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리뷰]
자유와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시작된 하룻밤의 탈주극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탈주의 시발점: 아문센 탐험가
출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탈주(2024)> 예고편모두가 잠든 침상에 홀로 눈을 규남(이제훈)은 몰래 창문을 넘어 자신만의 비밀 장소로 이동한다. 환풍기를 열자 보이는 <아문센>이라 적힌 책과 곳곳에 X표시가 되어 있는 지도가 보인다. 책과 지도를 움켜쥐고 군사경계선을 향해 달려단다.
'아문센'이란 노르웨이의 극지탐험가로 1911년 인류사상 남극점 도달에 성공했다. 탐험가 정신이 투철한 아문센을 동경한 규남은 북한의 군인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탈주를 꿈꾼다. 아문센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규남은 어디를 탐험하고 싶었던 걸까?
#탈주 1_북한에서 남한으로 탈주
출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탈주(2024)> 예고편드넓은 초원에 빨간 글씨의 간판이 있다.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새벽마다 어디론가 전력 질주하는 규남의 모습이 단독으로 잡힌다. 달리는 속도는 규남의 열망과 비례한다. 그 규남은 '자유와 행복'을 위해 질주한다. 규남은 지도에 X표시된 곳을 피해 조금씩 전진하다. 포복 자세로 땅에 칼을 꽂는다. 지뢰가 있는지 확인하며 지도에 X표시를 꼼꼼하게 한다. 북한에서 탈주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질주하기 위해.
규남의 탈북 계획은 부하 분대원의 돌발 행동으로 발각된다. 동혁(홍사빈)은 자신이 만든 지도라고 허위 자백을 하며 규남의 안위를 지켜준다. 끌려가는 동혁에게 규남은 함께 꼭 탈주하자고 다짐한다. 반면, 규남은 순식간에 탈주 공범에서 반동분자를 체포한 우수 군인으로 탈바꿈되어 사단 본부에 들어간다.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다. 현상은 규남과 유년 시절 인연이 있는 사이다.
하지만, 이 둘의 신분은 전혀 달랐다. 마치 누구나 감시할 수 있는 초소에 있는 자와 언제나 감시당하는 일반인의 관계와 같다. 러시아에서 피아노를 배운 현상, 그의 일가족의 운전기사를 수행한 규남의 아버지. 그 인연이 규남을 구제한 것이다. 보위부 소좌 현상은 규남과 함께 사단장 연회로 이동, 사단장 직속보좌의 직위에 규남을 추천한다.
출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탈주(2024)> 예고편
#탈주 2_정해진 운명에서 자유를 향해 탈주
출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탈주(2024)> 예고편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의 자택 운전기사로 근무한 사람이 규남의 아버지다. 고위 간부와 규남은 호형호제하던 사이로 나름의 인연을 맺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인연으로 인해 사단 본부에 근무할 수 있게 된 규남은 기쁜 표정보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은 탈주를 꿈꿔왔기 때문이다. 그런 규남의 향해 현상이 말한다.
허튼 생각 말고 받아들여. 이것이 네 운명이야.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던 규남은 정해진 운명으로부터 탈주를 꿈꾼다.
출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탈주(2024)> 예고편규남과 동혁의 탈주가 시작되어 군사분계선까지 이르렀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밤, 그들을 쫓아온 현상은 초소에 올라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현상이 있는 초소는 경계 조명으로 인해 밝고 높았지만, 규남과 동혁이 있는 곳은 진흙투성이 바닥이었다. 신분과 운명이 시각화된 장소에서 동혁은 결국 총에 맞아 죽는다. 규남은 동혁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비추고 감시하는 경계등을 모두 쏴버린다. 마치 자신을 감시하는 세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서려있는 듯했다.
끝없는 탈주와 추격이 반복된다. 실패조차 허락되지 않은 곳에서 탈주하려는 규남을 현상이 저지한다. 해보고 싶은 걸 하고 싶다던 규남에게 현상이 말한다.
"세상에 그런 낙원은 없어"
규남은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는 생각으로 탈주를 포기하지 않는다.
#탈주의 끝
출처: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탈주(2024)> 예고편그렇게 점점 남쪽에 가까워진다. 동이 트고 풀이 무성한 언덕을 지나 남한으로 가고 있다. 갈 길을 가겠다는 규남의 질주는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이다. 남한에 가면 실패를 계속할 텐데 그럼에도 가겠냐는 현상의 물음에 규남은 실패라도 하겠다고 말한다. 지금 처한 상황은 실패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난 규남은 과연 남한으로 귀순할 수 있었을까?
무사히 귀순에 성공했을까?
#진정으로 희구하는 것
보위부 소좌 현상은 러이사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수많은 관람객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만큼 조예가 깊었지만 결국 북한으로 돌아와 요직을 맡아 군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원하는 것과 해야만 하는 일 중 후자를 택한 듯하다.
규남은 탐험가를 꿈꾼다. 자신에게 <아문센> 책을 선물한 현상과 끝까지 갈등을 겪게 된다. 탐험가의 꿈을 꾸게 한 이가 결국 자신의 꿈을 저지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한 규남을 저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규남은 남한경계선 한 발자국을 남기고 총에 맞아 쓰러진다. 쓰러진 규남과 총을 겨누고 있는 현상. 즉살할 수 있었지만, 현상은 결국 남한 군인에게 규남이 호송되는 걸 지켜본다. 규남을 놓아준 것이다.
1년 후, 규남은 남한에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아문센이 되었다. 여행을 계획하고 꿈을 향해 도전을 한다. 동혁이 준비한 어머니의 선물까지 전달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규남과 현상은 각자가 원하는 자유와 행복이 있었다. 규남은 죽을 각오를 하며 결국 원하는 것을 쟁취한 반면, 현상은 자신이 원하는 걸 마음속에 묻고 해야만 하는 일을 수행한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희망적 탈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에서 느끼는 행복. 이를 느끼기 위해서는 질주해야 한다. 아니, 탈주해야 한다. 각자가 살고 있는 곳이 자유와 행복이 아닌 부당함과 불평등, 고단함과 막막함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탈주해야 한다. 진정으로 가슴 뛰게 하는 자유와 행복을 위해.
내가 진정으로 희구하는 건 무엇일까? 수많은 정보와 자극, 타인과의 좁아진 거리로 인해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가 바라는 무언가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바라는 대상을 직시하고 질주하면 좋겠다. 수많은 장애물과 처참한 환경이 나를 속박하고 있더라도 그곳을 탈주하기에 이 영화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