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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노 Oct 13. 2022

<방구석 일기장> 컴퓨터

나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인가

2022.09.14

날씨: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느라 날씨도 모르고 지나감


컴퓨터

#컴퓨터와 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컴퓨터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이다. 심지어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도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컴퓨터와 매 순간을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자 기계도 결국 하나의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컴퓨터를 많이 하는데도 아직 안경도 안 써도 될 정도로 눈은 그렇게 나빠지지 않은 것을 보면, 시력도 어느 정도는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 다가올 미래에는 눈을 감고서 말만 해도 컴퓨터가 알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해주는 날이 올려나. 아니, 이미 상당수의 일은 컴퓨터가 알아서 다 해주고 있다. 심지어 내가 직접 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더 나은 결과물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를 들어 애플의 시리나 삼성의 빅스비, 아마존의 알렉사 등 많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만인의 비서로 자리 잡은 지 이미 몇 년이 지났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한 판 이긴 게 지금 생각하면 기적일 정도로 이미 많은 분야에서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게 논란이 될 정도로 컴퓨터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어쩌면 그 이상을, 기분이 나쁠 정도로 잘 해내고 있다.


나도 시대의 흐름에 합류하여 컴퓨터의 노예를 자청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내가 직접 그리기보다는 AI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좋은 노래를 직접 찾기보다는 노래 추천 알고리즘의 선택을 따르고, 심지어 기본적인 장보기도 온라인으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러다가 머지않은 미래에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컴퓨터가 다 알아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편하고, 동시에 얼마나 무서운지.


#멍청한 컴퓨터


컴퓨터는 이렇게 똑똑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엄청 멍청한 녀석이다. 너무 멍청해서 어쩔 때는 짜증 날 때도 있다.


오늘 데스크톱 용량을 늘리기 위해서 새로운 드라이브를 구매하여 추가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중간에 실수로 강제 취소를 하는 바람에 파일에 손상이 가서 윈도우가 부팅조차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나름 컴퓨터를 공부하는 사람이라 그동안 쌓은 지식과 유튜브를 활용하여(심지어 컴퓨터를 고치는 데도 컴퓨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커맨드 창을 통하여 컴퓨터를 고치고 있다(지금 글 쓰는 이 순간도 아직 고치고 있어서 평소에 안 쓰던 노트북으로 일기를 쓰는 중이다). 파일을 스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인데, 얼마나 멍청한 지 고장 난 파일만 찾으면 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살피고 있다. 그러다가 중간에 에러라도 생기면 또 처음부터 다시 스캔한다.


쉽게 말해서 모래시계를 깨뜨려서 청소기로 한 번에 밀면 되는 것을 유리파편 하나하나씩 줍고 있는 셈이다.그러다가 유리파편 대신 모래알갱이를 잘못 집으면 주웠던 파편들도 다시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줍기 시작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좀 모자라보여도 성격은 착한' 케이스도 있겠지만 이 녀석은 모자라도 너무 모자라다. 태어나서 친구랑 싸운 적이 한 손가락으로 세도 남을 만큼 화를 잘 안내는 성격인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새로운 욕이 생각날 정도로 짜증이 밀려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왜 컴퓨터 모니터를 집어던지는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멍청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0과 1 밖에 모르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이 녀석에게 2를 알려주려면 초등학굔가 중학교 때 배운 이진법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1+1 이렇게 표현해야 그제야 2라고 알아듣는다.


#똑똑한 인간


사실 정말 똑똑한 것은 오직 0과 1만 사용해서 컴퓨터에게 모든 일을 시키는 우리 인간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코딩을 할 줄 알정도로 컴퓨터에게 명령하는 일이 쉬워진 시대이지만, 컴퓨터가 발명되지 얼마 안 지난 옛날에는 학창 시절 OMR카드에 마킹하듯이 하나하나 수동으로 코딩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킹을 한 부분은 1, 안 한 부분은 0으로 해서 모든 명령을 내린 것이다. 지금 시대 태어나서 망정이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지금 나는 하루 종일 OMR 마킹만 하고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 비서든, 자율주행 자동차이든, 또는 우리가 끼고 사는 스마트폰이든, 사실 그 뒤에는 명령을 내리는 인간이 있다. 다만 그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나 자신인지, 또는 다른 사람이 대신 내려준 명령인지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알파고를 넘어 베타고, 감마고, 오메가고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명령을 내리는 인간이 더 똑똑해지는 것이지 컴퓨터는 여전히 0과 1만 아는 멍청이이기 때문이다.


무슨 명령을 내릴지 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 인간의 몫이다. 내가 주체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될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대신 내려준 명령에 따라서 살 것인지는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Spotify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는 대신, 직접 새로운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있고, Youtube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영상을 보는 대신, 오랜만에 동네 서점에 가서 내가 좋아할 만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배달의 민족이 추천해주는 맛집에서 시켜먹는 대신,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서 고기라도 구워 먹을 수도 있다.


(요즘 잘 나가는 밴드를 포털 엔진에서 검색해보고, 온라인 북스토어에서 베스트셀러를 찾아보고, 먹방 유튜버가 추천해주는 맛이 좋은 고기 부위 구매할 수도 있다)


내일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이놈의 컴퓨터는 아직도 모래 알갱이만 줍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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