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화폐와 수령
경제적 현상이나 노동 생산물을 분석할 때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물신주의(fetishism) 현상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동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사회적으로 치밀하게 관계된 상호작용의 맥락에서 하나의 작업을 수행한다. 하루 종일 철사를 휘는 단순한 노동으로도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철사를 휘는 노동이 사회적으로 연관되어 의미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완제품을 생산하지 않으며, 거대 작업의 일부 공정만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긴밀한 내적 연관 속에서 일단 상품이 생산되면, 인간 사회의 거대한 사회적 맥락은 탈색되고, 상품은 인간을 배제한 상호 간의 관계로 치환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마치 상품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어서 가치를 획득하고 효용을 주는 것으로 오인한다. 이것이 상품이 신이 되는 비밀이다.
물신의 환상은 화폐에 와서 극대화된다. 연구자들마저도 영혼이 담긴 토템인 양 화폐를 의인화하곤 한다. 그러나 화폐는 사회적 관계일 뿐이다. 엄밀히 말해 화폐에 성격이 있다는 표현조차 적절한 것은 아니다. 화폐가 성격을 가지는 것은 그 성격이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전제해야 한다. 신용카드가 욕망하는 것을 얻게 하는 힘은 마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전자장비와 네트워크, 금융기관 간의 프로토콜 등이 플라스틱 조각(신용카드)의 통용을 가능하게 한다. 배후의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경제범주의 바라보는 것은 초국적 기업의 글로벌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 콜라병을 마주하는 부시먼 족(族)의 처지와 같은 것이다.
필자도 사물이나 현상을 묘사하는 관용적인 표현(예를 들어 ‘이자 낳는 자본’)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자칫 본질을 놓치고 환상적인 형태로 오해될 것을 걱정한다. 그래서 가끔 사회적이고 물질적 토대를 상기할 것이다.
북한으로 돌아가 보자. 1947년의 화폐개혁으로 북한은 화폐 자주권을 실현했다. 물론 한반도의 반쪽에서만 통용됨으로써 분단의 모순이 노정되는 상징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통해 유일 화폐제도와 더불어 재정금융의 토대를 굳건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식민지의 잔재를 단절하고 성립한 ‘공화국 화폐’는 1947년 이후 적지 않은 성격 변화를 보여 왔다. 여기서 북한 당국이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화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부여하는 기능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 이론에 따르면 화폐란 일정한 단계에서 발생했다 소멸되는 한시적인 경제범주일 뿐이다.
북한의 화폐금융 연구의 권위자 리원경은 이같이 말한다.
“화폐는 사회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발생하였다가 그 존재의 객관적 기초가 사라짐에 따라 점차 없어지게 되는 경제범주이다. 결코 영원성을 띤 경제범주가 아니다. … 상품화폐 관계의 경제적 기초를 생산물에 대한 소유의 분화에서 찾는 입장에 설 때 여러 생산방식에 걸쳐 존재해 온 상품화폐 관계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가 끝나면 없어진다는 정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리원경, 『사회주의 화폐제도』(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886), pp. 9~10.
결국 화폐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과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항구성이 없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화폐에 커다란 역할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북한 화폐가 수행하는 구체적 기능은 어떠한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