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거꾸로 휴가

바다 대신 도시로 떠난 여름

by 민쌤

거꾸로 휴가

_바다 대신 도시로 떠난 여름


여름이 오면 우리 가족은 늘 제주도로 향하곤 했다. 8년 전 처음 발을 디뎠던 제주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반짝이는, 마치 다른 세상처럼 아름다운 섬이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아들은 물만 보면 뛰어들었고, 평소 물놀이를 즐기지 않던 나조차도 바다에 들어가 아이처럼 놀았다.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하지 않았고, 거리나 해변에도 쓰레기가 거의 없어 쾌적했다. 음식값도 비교적 착해서, 마치 동네 산책하듯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해마다 여름이면 자연스럽게 제주를 찾았다.


하지만 작년 여름, 그 제주에서 큰 실망을 하고 말았다. 바닷가는 더 이상 깨끗하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햇볕은 뜨겁고, 해변 곳곳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사람들은 너무 많았고, 질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가 기억하던 그 신비롭고 평화로운 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올해 여름은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첫 해라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며 여행을 생략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 아빠는 가족 모두 함께 보내는 여름휴가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며, 무작정 서울 종로의 한 호텔을 예약해 버렸다. 성수기라 저렴하진 않았지만, 서울에 살면서도 한 번도 묵어본 적 없는 곳이기에 눈 딱 감고 2박 3일을 예약했다.


바다가 없는 여름휴가는 처음이라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지만, 막상 서울 도심 한복판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들과 복잡하게 오가는 자동차,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들마저도 낯설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마주한 서울의 밤 야경, 손을 꼭 잡고 걷는 연인들의 모습, 광화문을 가로지르는 바람 사이로 나는 어느새 두근거림을 느꼈다.


우리는 서울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장소들만 골라 다녔다. 우연히 들어간 맛집에서 맛본 음식들은 기대 이상이었고,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무엇보다 도시 곳곳에 가득 찬 에어컨 바람 덕분에 더위는 오래가지 않았다. 바다 대신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에서 보낸 여름은 생각보다 한가롭고 여유로웠다.


이번 ‘거꾸로 휴가’를 통해 우리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멀리 떠나는 것이 꼭 좋은 여행은 아니라는 것, 낯익은 도시도 시선이 달라지면 새로운 풍경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다음 여름휴가는 어디가 될지 아직 모르지만, 이제는 늘 가던 곳이 아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낯선 장소에도 마음이 열린다.


2025년 여름, 서울은 유난히도 더웠지만 우리 가족에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여행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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