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 책을 집어 드는 이유는 대개 비슷하다. 더 많이 알고 싶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조금 더 똑똑해 보이고 싶어서다. 나 역시 그랬다. 책은 지식을 쌓는 도구였고, 읽는다는 행위는 어딘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했다. 그래서 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기억하려 애썼다. 책 속에 정답이 있을 거라 믿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책을 오래 읽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읽기의 방향이 달라졌다. “무엇을 배웠는가”보다 “무엇이 남았는가”를 묻게 되었다. 책에서 얻은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문장은 삶의 한 장면과 겹쳐 오래 남았다. 힘들 때 떠오른 한 문장, 흔들릴 때 붙잡게 된 문장, 울고 나서 다시 숨을 고르게 해 준 문장들. 그때 깨달았다. 책은 지식을 주기보다, 살아가는 태도를 건네는 존재라는 것을.
삶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았다. 애써 괜찮은 척 웃다가도 문득 이유 없이 무너지는 날들이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허무 속에서 하루를 버텨야 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을 펼쳤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누군가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책 속에서 만난 문장들은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해주기보다는, “너만 그런 건 아니야”라고 조용히 손을 내밀어주었다.
책을 삶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이상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한 권을 빨리 읽는 것보다, 한 문장을 오래 곱씹는 시간이 소중해졌다. 그 문장이 나의 하루에 어떻게 스며드는지, 나의 선택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책을 덮은 뒤에도 그 문장이 내 말과 행동에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읽는다는 것은 결국, 삶을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연습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책을 읽으며 울었고, 어떤 날은 혼자 웃었다. 그 감정들이 부끄럽지 않게 느껴진 것도 책 덕분이었다. 타인의 삶을 따라가며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고, 말로 하지 못했던 감정을 대신 표현해 주는 문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책은 나에게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감정을 머물게 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 나는 책을 읽으며 많이 알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내 삶에 무엇이 남을지를 생각한다. 이 문장이 오늘의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들었는지, 이 이야기가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작은 틈을 열어주었는지를 묻는다. 그렇게 읽은 책 한 권은, 내 삶의 한 장면으로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책은 우리에게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줄 뿐이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조금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 책 속에서 울고 웃으며, 여전히 서툰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