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대하여

by 민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대하여



요즘 나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고 있다. 이전의 나는 도움이라는 말을 들으면 늘 물질적인 것, 혹은 몸을 직접 써야 하는 봉사를 떠올렸다. 돈을 보태거나, 시간을 내어 현장에 가는 일. 그것이 누군가를 돕는 유일한 방식이라 믿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얼마 전 시작한 필사 독서 모임의 채팅방에서 한 문장을 발견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필사를 해봤는데요.
제가 조금은 지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그 문장은 유난히 조용하고 깊게 내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 모임은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책과 멀어졌던 사람들, 필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 ‘잘’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이 모여 그저 참여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모임이었다. 그래서 그 한 문장이 더 크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삶에 ‘지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큰 울림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예전의 나는 도움을 주기 위해 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잘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내어줄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결론에 다다랐다.


도움이란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것. 작은 실천 하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태도, “당신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는 한 문장이 한 사람의 하루를, 아니 어쩌면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타인의 생각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그 마음에 공감하며, 함께 고민해 주는 일. 그것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아주 지적이고도 멋진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타인의 성장을 믿어주는 태도 자체가 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 경험이 적은 사람들을 이끌고, 선한 영향력을 나누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지. 그 일은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작가’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높은 목표와 거창한 계획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면 아마도 이런 놀라운 장면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함께해 보자고 손을 내민 선택이 이 작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나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성실하게 살아내려 한다. 내가 쌓아온 경험과 생각, 그리고 이 작은 모임들이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끝까지 함께하고 싶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대단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조금 먼저 걸어본 사람이 뒤를 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타인을 돕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우리가 타인을 위해 켜는 작은 등불 하나가

결국 우리 자신의 길도 밝힌다.”
_알베르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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