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늘 ‘무언가를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먼저 배운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더 좋은 길을 안내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아이들을 통해 다시 배우고 있다.
어쩌면 가르침보다 배움이 더 많았던 시간들이 내 앞에 조용히 쌓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 학원 아이들에게는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고, 공부라는 단어만 들어도 고개를 돌리던 아이들.
공부가 싫어 결석이 잦아지고,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해요”라고 말하던 아이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의 마음은 늘 복잡하다. 안타깝고, 조급하고, 때로는 무력해진다.
나 역시 그랬다. 아이들을 더 몰아붙여야 하나, 더 단호해져야 하나, 더 많은 숙제를 내야 하나. 하지만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었다. 아이들만 책상에 앉히지 않았다. 나 역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자세로 책을 펼쳤다. 학교 공부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각자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 책을 서로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짧은 분량이라도 좋으니, 그 안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문장이 마음에 남았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를 말해보게 했다. 처음에는 서툴렀다.
말이 길어지다 멈추는 아이도 있었고,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내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이들의 얼굴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줄어들었고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눈빛에도 집중이 생겼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아이들이 학원에 오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와서 자리에 앉고,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기대하는 표정을 짓는다. 공부가 완전히 쉬워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루함과 두려움으로만 가득 찬 시간은 아니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큰 보람을 느꼈다.
성적이 바로 오르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이들 스스로 배우는 감각을 되찾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늘 아이들 기준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고, 아이들의 하루를 온전히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다.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바라볼 때 100% 공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려고 애쓰는 어른으로 남고 싶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고 매일 “왜 그랬을까?”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은 가르침의 대상이기 이전에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들의 솔직함, 질문, 망설임, 작은 용기들이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아이들을 통해 나는 배운다.배움은 나이가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더 현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 교육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쳐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배워야 할 존재다.”
_마리아 몬테소리
앞으로도 나는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삶을 살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질문하고, 함께 멈추고, 함께 다시 시작하는 삶. 정답을 알려주는 어른이 아니라 배움의 과정에 동행하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 아이들의 눈을 통해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다시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