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했던 순간이 있는가

by 민쌤

서운했던 순간을 써보라는 말 앞에서



살면서 서운했던 일을 떠올려보라고 해서 잠시 멈칫했다. 서운했던 순간은 너무 많았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내 기억은 그 순간들을 선명하게 품고 있지 못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시간에 유독 힘들어했다. 그때의 나는 어떤 감정 속에 있었고, 무엇이 그렇게 버거웠는지 지금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이 비어 있다. 마치 책의 페이지가 통째로 뜯겨나간 것처럼.


어떤 이유로 기억을 못 하는 건지 나조차 알 수 없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원래 사람들은 어릴 적 기억을 이렇게 못 하는 걸까?’
‘나만 특별히 기억을 잃은 걸까?’

하지만 결론은 늘 같다.

어찌 됐든 나는, 내 과거를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딱히 좋았던 기억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내 머릿속에는 오래된 사진처럼 뜬금없이 스쳐가는 장면들이 뜨문뜨문 떠오를 뿐이다. 그 장면들은 감정이 없다.

소리도 없고, 온도도 없다. 그저 지나간 시간의 잔상처럼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서운했던 순간을 떠올리기 위해 과거가 아닌 ‘최근’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최근의 서운함은 비교적 선명하다. 그리고 그 서운함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최근 내가 가장 서운했던 일은 내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묻지 않으면 아이의 하루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고, 내가 조금 더 다가가려 하면 아이의 마음은 조용히 문을 닫아버린다.


고2가 되어가는 아들. 사춘기라는 이름이 그 아이를 감싸고 있다는 걸 안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이 나이에는 원래 그렇지.’
‘엄마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어.’

그렇게 나를 달래 보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쪽이 쓸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데, 정작 아이는 내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엄마가 된다는 건 사랑을 주는 만큼 돌려받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점점 더 배우고 있다. 그럼에도 서운함은 마음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더 복잡한 서운함은 남편에게 서 시작되었다. 아들은 사춘기라서 그렇다 쳐도, 같이 사는 남편은 왜 나와 함께하는 일에 무조건 동참하지 않는 걸까.


회사를 가고,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행복이다. 그게 남편의 방식이다. 반대로 나는 산만하다. 가만히 있는 것을 잘 못한다. 에너지가 넘치고, 움직이지 않으면 답답하다. 같이 드라마를 보자고 해놓고 나는 어느새 설거지를 하러 가고, 물건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책을 들고 방으로 사라진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웃고,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며 또 웃는다. 우리는 종종 농담처럼 말한다.

“우리 부부는 1도 안 맞는다.”

그 말이 웃음으로 끝날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그 말이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나는 가끔 남편과 산책을 하고 싶다. 같이 영화를 보고 싶고, 같이 운동도 하러 다니고 싶다. ‘함께’라는 단어를 조금 더 많이 내 삶 속에 넣고 싶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나의 제안을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 서운해진다.


나는 함께하고 싶어서 말한 건데 남편은 그 시간을 ‘해야 할 일’처럼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가 혼자 애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어쩐지 마음은 혼자인 듯한 느낌. 그 감정이 조용히 밀려올 때 나는 서운함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은 늘 나에게 관심을 갖고, 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세상이 나를 흔들어도 그 사람만큼은 내 편이 되어준다.


나에게 남편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런데도 왜 서운할까. 아마도 나는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함께하는 사랑’을 더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 말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

같이 추억을 만드는 사람. 그것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서운함은 결국 기대가 있어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것을. 기대가 없으면 서운할 일도 없다. 그러니 내가 서운하다는 건 내가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 마음이 외로움이 되어 가끔 나를 건드릴뿐이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사랑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너무 커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서운함을 원망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 대신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남기고 싶다.


서운함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그 감정을 통해 나를 알게 된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 사람인지, 내가 어떤 관계를 꿈꾸는 사람인지. 서운함은 내 마음의 신호다.


‘나 좀 봐줘.’
‘나도 함께하고 싶어.’
그런 말들을 하지 못하고 삼킨 마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서운함을 글로 적는다.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받는 이유는, 가장 큰 기대를 걸기 때문이다.”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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