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첫날, 다짐은 무너지고 나는 다시 앉는다

by 민쌤

명절 첫날, 다짐은 무너지고 나는 다시 앉는다



명절이 오기 전,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번 연휴만큼은 초안을 쓰고, 책을 읽고, 오롯이 글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둔 원고를 펼치고, 두 권의 책을 끝까지 읽어내며, 나만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명절 첫날부터 그 다짐은 쉽게 무너져버렸다. 잡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청소를 해도 다시 어질러지고, 정리를 해도 또 다른 일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손을 뻗는 곳마다 해야 할 일이 생겨났다. 마치 명절이란 시간은, 나를 책상으로 보내는 대신 부엌과 거실로 계속 밀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명절이면 모두가 집을 비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명절에도 집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못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고, 나는 애초에 세워둔 계획을 다시 수정해야 했다. 명절이란 이름은, 생각보다 사람을 많이 불러들이는 시간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명절에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음식을 보면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고,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마주하면 가족들이 생각나고, 뭐 좀 하겠다고 책상에 앉으면 ‘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지?’ 하는 생각에 멍해지는 시간이 기본으로 따라왔다.


30분쯤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하루가 흘러가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딱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초고를 쓰려면 분명 무언가 시작해야 하는데, 그 ‘시작’이 내게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청소를 시작하려니 일이 커질 것 같고, 요리를 해서 밥을 먹자니 치우기까지 두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그렇게, 명절 첫날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또 알고 있다. 내가 무너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다시 차분하게 앉아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시간대별로 스케줄을 적기 시작했다. 물론 적는다고 해서 모두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계획은 늘 현실 앞에서 변하고, 나는 늘 계획보다 감정에 더 흔들리는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적었다. 막연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비록 어긋나더라도 방향을 잡아두는 것이 내 마음을 조금 더 안정시켜 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명절은 나를 흔들어도 나는 다시 나를 붙잡아야 했다. 나는 이번 명절을 뜻깊게 보내고 싶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매일 글을 쓰고, 초고를 위한 시간에 최대한 투자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초고를 쓰면서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쓰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초고는 원래 완벽하지 않다.


초고는 처음부터 명확한 답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쓰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설령 초고가 완성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번 명절을 ‘글쓰기에 집중했던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니까.


고2가 되어가는 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공부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들이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그래서 그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억지로 붙잡는 사랑보다 조용히 기다리는 사랑이 더 오래간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으니까.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글을 쓰는 삶.

내가 먼저 모범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가 먼저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명절 첫날, 다짐은 무너졌지만 나는 다시 앉았다. 그리고 다시 쓴다.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은 결국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니까.

이번 명절, 파이팅!!!


“시작은 늘 서툴다. 그러나 서툰 시작이 결국 삶을 바꾼다.”
– 괴테(Goethe)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6년 구정 연휴는 어떻게 보낼 계획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