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굴비찌개 한 그릇의 위로
연휴 때 수고한 나를 위해 어떤 요리를 선물하고 싶은가
_고사리굴비찌개 한 그릇의 위로
얼마 전 나는 설 연휴를 준비하며 장을 보러 갔다. 평소 같으면 마트로 갔을 것이다. 빠르고 편리하고 익숙 곳에서 필요한 것만 담아 나오면 되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부터 달랐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웅성거렸고, 비닐봉지가 부딪히는 소리와 생선 냄새, 튀김 냄새가 동시에 코끝을 건드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지금 장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어쩌면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릴 적 엄마는 식당 일로 늘 바빴다. 바쁜 엄마는 나를 혼자 집에 두고 나갈 수 없었고, 그래서 가끔 귀찮고 피곤해도 나를 데리고 영등포시장에 가곤 했다. 그곳은 어린 나에게는 작은 세상이었다. 사람들 틈에서 반짝이는 물건들과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했고, 나는 그 풍경이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거움 속에서도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시장 한편에 늘어놓인 고기들. 개나 소의 잘린 부위들이 아무렇지 않게 진열되어 있었고, 그것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기절할 것처럼 무서웠다. 그 장면은 지금도 간간히 사진처럼 떠오른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웃음과 공포가 함께 묶여, 한 장면으로 남아버린다. 그 시절 엄마는 가끔 조기를 몇 마리 사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굴비처럼 귀한 생선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그것으로 우리에게 고사리조기찌개를 끓여주었다. 정확한 유래는 모르지만, 고사리조기찌개는 전라도 쪽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들었다. 제사상에 올렸던 조기를 찜하거나 구워낸 뒤, 제사가 끝나면 남은 생선을 고사리와 함께 넣어 칼칼하게 끓여 먹는 찌개.
그 음식은 나에게 단순한 찌개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엄마의 손맛과, 엄마의 생활과, 엄마의 애틋함이 함께 들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음식은 우리 아들도 어릴 때부터 종종 먹었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세대가 바뀌어도 그 맛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건 맛이 아니라, 기억이 전해지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명절에 유독 그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설날이 다가오고, 서울로 가려던 계획이 무너지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엄마가 더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번 설에는 고사리굴비찌개를 끓여 우리 가족과 함께 먹어 보자고.
요리를 시작하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바빠졌다. 재료를 다듬고 국물을 내고, 고사리를 넣고, 조기를 손질하는 동안 나는 계속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이런 날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이 찌개를 끓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도 그리운 사람이 있었을까. 엄마도 이런 명절을 보내며 울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찌개는 완성되었고, 밥상에 올랐다. 그리고 한 숟갈을 떠먹는 순간, 나는 알았다. 엄마가 해주던 그 맛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면... 2% 부족한 맛. 하지만 그 2%가 오히려 더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 부족함은 내가 요리를 못해서가 아니라 엄마라는 존재가 빠져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남편도 맛있다며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해 주었다. 그 말이 고맙고, 따뜻했고, 그 덕분에 식사 시간이 더 포근해졌다. 거창하고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의 찌개는 내가 나에게 준 가장 정직한 선물이었다.
가끔은 이런 음식을 먹으며 엄마 생각이 나서 울게 된다. 그래서 이런 기억이 다시 슬픔을 불러오는 악순환이 아닐까 스스로 의심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리움 때문에 아픈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고.
어쩌다 한 번씩 그리움을 느끼고, 그리움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나고, 그 감정을 그냥 두는 것. 그건 나를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을 품고 있으며, 그 사랑이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는 증거였다.
명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건강하게, 무탈하게.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하고 싶었던 독서도 했고, TV도 실컷 보며 쉬었다. 이제 마지막 연휴가 남았다. 오늘 하루를 잘 정리해서 흐트러짐 없이 마무리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내가 나를 위해 한 그릇의 찌개를 끓였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연휴는 충분히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가끔은 음식이 사람을 살린다고. 그리고 한 그릇의 찌개가 한 사람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고. 엄마가 그랬듯, 나도 그렇게 잘 살아내고 있다고 나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