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술, 술 술에 대한 나만의 철학이 있나?

by 민쌤

술, 술, 술 술에 대한 나만의 철학이 있나?



나는 평생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인 줄 알았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술을 마셨을 때, 맥주 한두 잔만 마셔도 몸이 축 늘어지며 픽픽 쓰러졌다. 사람들은 웃었고, 나는 민망했고, 그날 이후 자연스럽게 ‘나는 술이 약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술자리는 싫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 웃음이 오가고, 평소 하지 못했던 말들이 흘러나오는 그 공간이 어쩐지 자유로워 보였다. 그래서 술을 자주 마시진 않았지만 술자리는 자주 참석했다. 마시지 못해도 괜찮았다. 나는 그저 ‘노는 게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칠곡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내 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내가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맥주를 못 마시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처음 학부모 모임이 있었던 날이었다. 누군가 소주잔을 내밀었고, 나는 망설이다가 한 잔을 마셨다. 그런데 이상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두 잔을 마셔도, 세 잔을 마셔도 어지럽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긴장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 몸뚱이는 맥주가 아니라 소주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술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주량이 세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몸을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나는 나만의 규칙이 있다. 아주 단순하지만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원칙들이다.


첫째, 일주일에 1~2번만 마시기.

둘째, 소주 2병 이상은 넘기지 않기.

셋째, 가능하면 걸어서 집에 들어가기.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원칙. 외롭거나 슬플 때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기.


이 원칙은 내가 살아오면서 스스로에게 만든 가장 단단한 약속이다. 술은 기분 좋게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기분 나쁘게 마시면 기분이 더 나빠진다. 술은 결국 내 마음을 증폭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슬픔을 잊으려고 마신 술은 슬픔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더 크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좋은 기분일 때만 술을 마시려고 한다.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마시는 술은 내 하루를 따뜻하게 덮어준다. 그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공기를 맞으며 걷다 보면 마음이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마치 ‘나는 오늘도 잘 살았다’는 작은 확인을 받는 것처럼.


물론 살다 보면 불쾌한 자리도 있다. 술자리가 늘 행복할 수는 없다. 분위기가 이상해질 때도 있고,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끼어 있을 때도 있다. 그런 자리에선 억지로 분위기를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럴 땐 물을 더 자주 마시거나, 말을 줄이고 듣는 쪽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래도 힘들면 빨리 자리를 피해 버린다.


내 삶에서 술은 ‘도피’가 아니라 ‘정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은 나를 망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조금 부드럽게 풀어주는 작은 도구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되, 술에게 내 인생을 맡기지 않기로 했다.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분 좋은 술을 마시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 역시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생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무 잦은 술자리가 생길 때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텀을 두고 마시려고 노력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다.


요즘은 몸이 흐트러지고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술자리를 줄이고 있다. 예전처럼 마시면 다음 날이 힘들다. 술이 주는 즐거움보다 몸이 주는 경고가 더 크게 들리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나는 오래전부터 술을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먹으면 금주도 가능하다. 술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사람을 만나는 자리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은 많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기준을 지키며 마시는 것이라고.


세상에는 술이 술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 매일 술을 마시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술을 마시면 늘 기억을 잃는 사람들이다. 기억을 잃는 술은 즐거운 술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나를 지우는 방식이다.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더 솔직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마시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는 내 주량과 내 술버릇 정도는 반드시 알고 마셔야 한다. 필요하다면 물이나 비타민을 챙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 몸을 보호하는 습관은 결국 내 인생을 보호하는 습관이 된다.


술을 마시고 정신까지 놓아버리는 버릇은 절대 들이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술 마시는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원칙이 있는 술은 사람을 살린다. 원칙이 없는 술은 사람을 무너뜨린다. 오늘도 나는 내 삶을 지키기 위해, 내 방식대로 술을 마신다. 그리고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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