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좋은 직장을 얻은 일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사업을 시작한 일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세계 여행을 다녀온 일을 최고의 선택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단 한 번도 망설여 본 적이 없다.
내 인생 최고의 잘한 일은 아들을 낳고, 그 아이와 함께 오늘까지 살아낸 것. 그리고 남편과 함께 20년을 버티고, 견디고, 사랑하며 우리 세 식구가 지금도 알콩달콩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가족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기적 같은 시간인지.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나는 첫째 아들을 잃었다. 그 사건은 단순히 한 생명이 사라진 일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내 삶의 방향도, 마음의 뿌리도 모두 뽑혀나간 것 같았다. 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이었다. 숨 쉬는 것조차 죄처럼 느껴졌다. 그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내가 매일 마시는 공기 속에 섞여 들어와 나를 끝없이 괴롭혔다. 세상이 무너졌고, 나는 그 무너진 세상 속에서 겨우 몸만 움직이며 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다.
첫째를 떠나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둘째를 임신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혼란이었다. 나는 아직 첫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는데 내 몸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첫째에게 미안했고, 배 속의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기쁨을 느끼면 첫째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고, 슬픔에 잠기면 배 속의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나는 웃을 수도 없고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 그 아이러니한 감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시절의 나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았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배 속에 있는 생명 때문이었다. 내가 무너져버리면 그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상처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살아야 한다.’ 그건 결심이라기보다 절박한 생존이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한다. 만약 그때 우리가 선택을 잘못했더라면, 만약 그때 내가 삶을 놓아버렸더라면, 오늘의 우리 세 식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들은 태어났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보통 아이들은 울고 떼쓰고 짜증 내며 부모를 시험하기 마련인데, 우리 아들은 그런 적이 거의 없었다. 마치... 우리 집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다 알고 태어난 아이처럼.
늘 웃었고, 늘 나를 먼저 찾았고, 늘 다정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자주 생각했다. ‘이 아이는 나를 살리러 왔구나.’ 그래서 더 미안했고, 그래서 더 감사했다.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공부도 스스로 잘해주었고 바르게 성장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내 곁에 머물러 주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매일 감사하며 살아갈 이유가 생겼다.
지금 아들은 고2가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웃으며 우리를 반긴다. 볼을 내어주며 뽀뽀할 수 있게 해 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준다. 요즘 세상에서 고등학생 아들이 부모에게 다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아들은 아직도 내 마음의 온도를 지켜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나는 그 아이가 웃어주는 순간마다 마음속으로 되뇐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고, 잘 살아내고 있다.’라고.
나는 아들을 집착하거나 구속하려는 마음은 없다. 아들은 언젠가 나의 품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잊고 싶지 않다. 그때 그 시절,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 아이가 내게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나 나를 다시 숨 쉬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그 아이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내가 다시 밥을 먹을 수 있게 했으며, 나를 다시 웃게 했다. 또한 내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고, 내가 다시 삶을 계획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들은 나에게 그저 자식이 아니라 삶을 되살린 존재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열심히 살아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안다. 삶은 늘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가정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눈물이 있고, 각자의 무게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겉으로는 평범한 얼굴로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말 못 할 사연 하나쯤 안고 살아간다. 그 사연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 사연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 사연을 잘 간직하고 그 사연을 품고도 살아내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 인생 최고의 잘한 일은 아들을 낳고, 그 아이와 함께 살아낸 것이다. 그 아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아들과 남편과 함께 더 단단한 가정을 만들어가며 더 따뜻한 삶을 살아내고 싶다고.
살아낸다는 건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일이고, 그 사랑이 나를 다시 살리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