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남겨진 사람

by 민쌤


술자리에서 남겨진 사람




나는 가끔 술을 마신다. 어쩌면 일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자주 마시는 편일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 많게는 세 번까지.


예전의 나는 퇴근 후 술 한 잔을 자연스럽게 하루의 마무리로 받아들였다. 그 시간은 나에게 휴식이었고, 사람들과의 연결이었으며, 때로는 하루의 감정을 풀어내는 작은 의식과도 같았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조금 달라졌다.


아무 자리 나 가지 않는다. 꼭 가고 싶은 자리, 꼭 만나고 싶은 사람, 그런 자리에만 조심스럽게 나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한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사람을 너무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 질문은 여전히 내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한 채 맴돈다.


사람들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분명 따뜻하다. 웃음이 오가고, 서로의 하루를 묻고, 조금은 솔직해진 마음들이 오가는 그 시간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대화가 깊어질수록 이야기는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옮겨간다.


누군가의 상처, 누군가의 외로움, 그리고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때의 술은 참 묘하다. 어떤 날에는 서로를 더 이해하게 만들고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또 어떤 날에는 그 모든 감정들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


며칠 전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였다. 시간은 금방 흘러 세 시간을 넘겼고, 네 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웃기도 했고, 울먹이기도 했고, 서로의 마음을 꺼내어 놓으며 진심을 나누었다고 믿었다. 그날의 마무리는 참 따뜻했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묘한 공허함이 밀려왔다. 우리는 분명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억이 나에게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두려웠다.


마치 혼자만 진심을 쏟아낸 사람처럼, 혼자만 그 시간을 붙잡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런 일은 사실 처음이 아니었다. 비슷한 상황은 여러 번 반복되어 왔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 관계를 놓지 못했다. 가느다랗게 이어진 끈을 붙잡고 끊어질까 봐 조심하며 기다리고, 버티고,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너지기보다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붙잡고 있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그동안 내려놓지 못했던 관계들을 하나씩 바라보게 되었다.


오래되었지만 의미가 희미해진 관계, 형식만 남아 있는 관계, 이름만 친구인 관계. 나는 그 관계들을 조용히 정리하기로 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언가를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되찾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맞추기 위해 나를 소모하지 않으려 한다.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적더라도 진짜 나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나 자신을 먼저 지켜보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지. 그 질문들에 답하며 조금 더 단단한 나로 살아가고 싶다.


“관계는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선택하는 것이다.”

_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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