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가 달라진다는 것

by 민쌤

궤도가 달라진다는 것



“어느 순간 거리감이 느껴질 때 관계의 끝을 예감하고 상대를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서로의 궤도가 달라졌을 뿐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삶을 운행해 나간다.”
_림태주, <관계의 물리학> 중에서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문장을 만났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문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손이 멈췄다. 눈이 문장 위에 붙잡힌 채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정확해서였다. 마치 내 마음속 어딘가를 들킨 기분이었다.


우리는 관계가 멀어질 때, 쉽게 ‘잃었다’고 말한다. 좋았던 기억이 많을수록 그 감정은 더 크게 다가온다. 자주 연락하던 사람이 점점 뜸해지고, 이유 없이 차가워진 태도를 마주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왜 이렇게 된 걸까?’


그 질문들은 대부분 나를 향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늘 자책이 남는다. 나 역시 그랬다. 함께 웃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멀어졌다고 느꼈던 순간들, 배신감처럼 느껴졌던 거리감,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까지. 그 모든 것을 나는 ‘잃어버림’이라고 정의해 왔다. 하지만 이 문장은 조용히 말을 바꿔 놓는다.


잃은 것이 아니라, 그저 궤도가 달라졌을 뿐이라고. 궤도라는 단어는 묘하게 따뜻했다. 우주 속에서 각자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별들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간다. 어떤 순간에는 같은 궤도 위에서 만나 함께 빛나기도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틀린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붙잡고 있던 감정들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를 떠났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사실은 서로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결과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관계를 붙잡으려고 애쓰지만, 사실 모든 관계는 ‘같은 궤도에 머무르는 시간’ 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생각보다 짧게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길고 짧음이 관계의 가치까지 결정하지는 않는다.


함께했던 시간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 한다.

누군가가 멀어졌을 때, 그 사람이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기보다 ‘우리의 궤도가 달라졌구나’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붙잡고 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고, 불필요한 자책도 줄어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 곁에 같은 궤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게 된다.


관계는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다. 붙잡으려 할수록 상처가 되고, 흐름을 인정할수록 이해가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운행하는 존재다. 누군가는 잠시 내 곁을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 함께 머문다.


그 모든 만남과 이별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 한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누구도 잃지 않았다. 다만, 서로의 길이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_에픽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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