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벗은 어릴 적 일주일에 한 번은 강원도 홍천에 살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 다녔다며 기분 좋은 회상을 하곤 했다. 홍천에서도 내촌에 있었던 할아버지의 약국, 약국 바로 앞다리 밑 개울에서 놀던 일, 가족끼리 외식으로 자주 먹었던 고추장 삼겹살 가게 등등.. 들을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들떠 보였다. 그런 연유로 조부모님과 유독 가깝게 지냈던 벗을 위해 소중한 여름휴가를 내촌면으로, 무려 글램핑으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이제 조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던 마음에는 이견이 없었다. 강릉, 속초, 양양과 같은 강원도 핫플레이스를 제쳐두고 우리는 그렇게 홍천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여름, 겨울 시즌이 늘 바빴던 내게 약 5년 만에 여름에 떠나는 휴가이기 때문이다. 퇴직이라는 큰 쉼표를 찍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이럴 때만큼은 그 결정에 무한 박수를 치게 된다. 일급수에서 다슬기와 함께 수영할 수 있다는 것, 옥수수와 찐빵 그리고 생칡즙을 도로에서 손쉽게 살 수 있다는 것, 깊은 산속 글램핑장에서 만나는 새끼 고양이, 하늘의 청색과 숲의 녹색, 수타사에서의 소원 빌기, 청량한 아침에 읽는 책의 한 문장까지. 또래들은 국내가 아닌 해외로 떠나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유독 우리 것이 가진 특별함과 조우하는 울림이 있었다. 초록을 좋아하는 내게, 홍천은 어디를 가도 초록이었다. 그런 경험 또한 울림이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곳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구불구불 멀미가 날 정도로 험했던 산길은 직선 도로로 잘 포장이 되어 편했고, 혹 커피 마실 곳은 없지 않을까 걱정하던 우리에게 그것 또한 편견임을 알게 했다. 우연히 들른 커피전문점이 '핸드드립 전문점'이었던 것도 참 좋았다. 포터필터로 손쉽게 약 20초면 만들어지는 아메리카노가 아닌 '핸드 드립'커피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 굳이 홍천을 선택한 이유와 맞닿아있는 그런 순간들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러므로 환호하였고 각자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내부가 나무로 된 어떤 공간은 여름의 끝자락에 선물 받은 책을 읽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오래갈 것이라는 편견에서 우리는 기성품을 구매하지만, 결국 좋은 나무로 만들어진 어떤 것이야말로 50년 혹은 100년까지 쓸 수 있다는 문장을 읽었다. 무언가를 '버리고 새로 산다는 것'만 생각했지, '오래 쓴다는 것'이 익숙지 않은 나에게 그 문장은 홍천과 참 닮아있었다.
벗의 추억이 방울방울 담긴 장소와, 때로는 새로이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여러 공간들을 방문하며 웃고, 떠들고, 먹고, 마셨던 2박 3일이었다. 아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요리를 해서 먹었던 것도 오랜 추억이 될 것 같다. 배달이 편해져서 생활하는 곳에서조차 요리라는 것을 멀리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땀 뻘뻘 흘리고, 모기기피제를 뿌려가면서까지 야외 바비큐를 포기하지 못했던 우리는 미련했지만 그래서 더 예뻤다. 챙겨간 빔프로젝트로 숲의 형상을 잔뜩 띄워놓고 마셨던 와인과,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며 그 서사를 이야기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눈 깜짝할 새 서울에 돌아와 짤막한 글을 쓰고 있으나 2024년 여름의 끝자락에서 벗들과 보냈던 그 순간만큼은 내 인생에 영원일 것임을 직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