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조우하는 고생스러운 마음
'갑자기 이렇게 힘들어진다고? 너 정말 이러기냐.'
불쑥불쑥 내 삶의 뿌리를 흔들어대는 녀석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마음'이다. 타고난 성향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의도를 쉽사리 파악할 수 있는 눈치 빠른 나는, 역시나 타고난 성향 탓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잡음까지도 모두 내 공간에 들이고 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삶 자체가 아주 디테일해지곤 한다. 그러니까 인생을 하나의 숲으로 보다가, 갑자가 나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게 되니 심히 피곤해진다.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문다. 나무 한 그루, 나무 두 그루, 나무 세 그루... 그러다 보면 결국 숲이 될지도 모른다는 일념하나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럼에도 얄팍한 내 고민들은 마치 앙상한 나무 같아서 절대로 숲이라는 이상향을 만들 수 없다.
그런 내 앙상한 생각들에 각자 나름의 초록을 불어넣어주는 고마운 벗들이 있다. 기억에 남는 조언이 있다면 '사회생활을 마치 소개팅이라고 생각해 봐.'라는 조언. 마음이 맞으면 꽤 재밌는 거고, 잘 맞지 않으면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는 관계로 가볍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소개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사람대 사람으로 관계를 쌓는데, 목적이라는 것이 생기면 안 된다는 나름의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꼭 소개팅이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들을 꾸준히 교제하긴 하였으나, 그럼에도 그 반대 즉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가볍게 넘겨야 하는 것인지를 배울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요 근래 스스로 그런 감정을 다루는 것에 아주 무지하고 무엇보다 유약하다는 단점을 고스란히 느끼는 중인 셈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내 곁에는 좋은 벗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단 내 마음은 고생스러웠을지언정 아예 무너지지는 않는다. 오늘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작은 노트에 감사한 벗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모든 일정이 끝난 밤, 모르는 사람들로 그득한 전철,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서먹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 수첩에 적힌 벗들에게 짧은 엽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6-7년 전에는 심지어 몰랐던 이름도 있고, 어느새 조용히 사라진 이름들도 떠올려보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실감하였다. 뜨거운 여름은 갔고, 어쩌면 가을밤에 걸맞게 체념이라고 말할 수도, 그러나 그런 감정조차 시시해지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