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올해 들어 유난히 크고 밝은 달이 뜬 날 중 하루였다. 올해 가장 크고 밝다고 쓰지 않은 이유는, 올해만 몇 번째 수퍼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지만 일명 슈퍼문중에서도 '블루문'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가사가 좋아 즐겨 듣던 노래 제목이 '블루문'이어서 그 유래가 궁금하기도 했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수퍼문이라 블루문이라고 했을까? 어쨌든 블루문까지 나온 처지에, 수퍼문이라는 단어는 예전만큼 대단한 명칭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맨날 수퍼문이래~'하는 다소 냉소적인 혼잣말을 듣던 그 순간,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거리감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요즘 생각이 많다. 물론 퇴사하기 전에는 잡념이 많았다면, 요즘은 상념이다. 나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어른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에 합류할 수 있는 행운이 겹치면서, 정말 일상의 순간순간에 수십 가지의 생각들이 스친다. 물론 좋은 쪽으로. 예를 들면 의식적으로 접하지 않았던 고전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적 허영심일 수도 있지만 그냥 어른들의 대화에 자연스레 끼고 싶다. SF소설도 좋지만 중간중간 고전도 섞어가면서 올해를 채워야겠다. 많이 읽다 보니 자꾸 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고, 오로지 읽는 것만이 재밌고 좋아져서 큰일이지만, 어쨌든 꽤 기분 좋은 자극이다.
초반보다 해이해지기는 했지만 스페인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고 있다. 일처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복습과 예습만 꾸준히 하는데 의의를 둔다. 그럼에도 스스로 느낄 정도로 실력이 꽤 좋아졌다. 스페인에 가서 생활자로 살아볼 일은 글쎄 아직까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에는 유럽이라는 곳을 꼭 한 번 가봐야지. 금전적인 부분 때문에 고민이 되지만 어쨌든 나도 안달루시아의 오렌지 향이든, 북부의 박물관이든 직접 느껴보고 싶다.
이외에도 주변에서 던져주는 소스들을 야무지게 받아먹으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몸이 심심할 틈이 없다. 일할 때보다 시간관리가 더 안될 정도로. 그리고 그날, 수퍼문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누구인가 깨닫게 되었다. 소중한 벗들이 하나 같이 궁금해했던 사람. 그리고 실제로 봤을 때 너무 소박해서 놀랐다는 사람. 그럼에도 나한테는 어딘가 특별한 사람. 나라는 존재가 시시해지고, 그 사람의 삶에 물음표를 던지게끔 만드는 사람. 다가가기에 의외로 너무 먼 사람. 내가 아니어도 반짝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충분히 많은 사람. 수퍼문은 시시한 사람.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을 한 사람. 나와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사람.
나도 그 나이쯤 되면 수퍼문이 아니라 블루문에 관심을 갖게 될까? 나도 똑같이 수퍼문이 시시해지고, 그런 것들이 모여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까? 너무나도 싫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달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이번에는 잡념에 가까운 오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을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걸으면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