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 리뷰
<캐스팅>
안중근 역: 민영기
설희 역: 리사
이토 히로부미 역: 김도형
링링 역: 이수빈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안중근, 유관순, 또는 윤봉길을 떠올린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안중근 의사를 재조명하며 정확하게 하얼빈 거사 100주년 이 되는 2009년 10월 26일에 뮤지컬 ‘영웅’이 초연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업적과 인간적인 삶을 보여주면서 2009년 초연된 이후로 매년 재연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뮤지컬의 본고장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앞에서 재연될 정도로 그 작품성도 크게 인정받으면서 한국 창작뮤지컬의 모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창작뮤지컬로써 뿐만이 아니라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친 역사 뮤지컬로써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굉장히 사실에 가깝게 재현해 냈고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고뇌까지 담아내면서 안중근 의사를 더 자세히 소개할뿐더러 자연스럽게 애국심과 존경심을 일으키는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이 역사적 사실과 가장 다른 부분은 바로 가상 인물인 ‘설희’와 ‘링링’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설희는 어릴 때 애기나인으로써 명성황후를 모셨던 조선의 궁녀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에 독립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설희는 안중근을 도와주는 정보원의 역할로 일본에서 게이샤로 위장하여 이토 히로부미의 눈에 들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와 동행하여 하얼빈으로 향하고 계속해서 안중근 의사에게 정보를 전달해준다. 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토를 살해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알아볼 수 있도록 이토에게 손수건을 꽂아놓고서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원래 역사적 사실은 설희가 아니라 유동하가 거사 지역 사이의 연락과 통역을 담당하며 이토 히로부미의 일정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에서 설희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부여하기 위해 삽입된 가상인물이지만 독립운동에서 여성도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고 궁녀라는 점에서 조선의 황실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설희가 뮤지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으나 설희를 보면서 그 용기와 간절함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이 당시에 여성으로서 설희가 가졌던 장부 못지않은 용맹함과 희생정신, 애국심 등은 어떤 시대고 어떤 상황이라도 꼭 갖춰야 하는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설희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느끼는 인간적인 정과 국가적 대의 사이에서 고뇌를 보면서 어쩌면 다른 독립 운동가들도 느꼈던 고민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링링은 러시아 독립운동의 거점인 만두가게의 주인 왕웨이의 어린 여동생이자 짝사랑하는 안중근 의사가 일본군들에게 쫓기자 대신 희생하는 역할이다. 로맨스적인 요소를 위해 삽입된 인물이지만 광복을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독립투사뿐만이 아니라 많은 백성들과 독립투사들의 가족들의 희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직 16살 밖에 안 된 여자아이가 희생당하고 죽는다는 것에서 일본군의 참혹함과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이외에 안중근 의사와 함께 거사를 계획했던 조도선, 우덕순, 유동하는 실존인물들로 하얼빈 거사에 참여했었다. 다만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들은 조도선은 실제로는 세탁소 주인이지만 뮤지컬에서는 명사수로 설정이 되었고 우덕순은 약간 코믹적인 부분을 가미해서 극한의 상황에서도 풍류를 즐기는 의리의 사나이로 나온다. 유동하는 실제와 마찬가지로 17세의 어린 나이에 러시아어의 능통한 사람으로 나온다.
이 뮤지컬은 우리가 실제로 아는 안중근의 업적들뿐만 아니라 안중근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뇌를 다루면서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천주교도로 토마스(도마)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었는데 뮤지컬 ‘영웅’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고뇌와 아픔의 상황에서 주님과 모친이셨던 조마리아 여사가 정신적인 지주로 나온다. 실제로도 의사의 부친이 신부들의 도움에 의해서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일가족 30명과 함께 프랑스인 빌렘 신부의 인도로 입교하게 되었다. 도마 안중근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세례명인 토마스로 바꿔 쓴 것이다. 조마리아 여사도 독실한 천주교도로 사형을 앞둔 안중근에게 이러한 편지를 쓰며 안중근 의사가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하고 지지해주었다. 이 편지 내용은 뮤지컬에서 조마리아 여사 역할의 배우가 부르는 노래로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
이 노래를 들으면서도 굉장히 슬픈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조마리아 여사의 의연한 모습에 가슴 아팠다. 분명 본인도 어머니로써 안중근 의사를 살리고 싶고 말리고 싶었을 텐데 국가적 대의를 위해 개인적인 행복을 희생하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안중근 의사는 올곧은 생각을 가진 가족들과 용맹한 동료들이 있었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영웅’에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바로 안중근 의사께서 <동양평화론>이라는 논문 형식의 논설을 쓰셨다는 것이다.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후 1,2개월 동안 쓴 것으로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서 형을 조금 늦춰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의사는 ‘[네이버 지식백과] 동양평화론 [東洋平和論] (시사상식사전, 박문각)’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을 통해 ‘동양의 대세 관계와 평화 정략의 의견’을 개진하려고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뮤지컬 ‘영웅’에서 보면 안중근 의사께서 사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고 남은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책을 쓰시고 책을 읽으신다. 일본인 간수 또한 이러한 모습에 깊게 감명받아서 굉장히 존경한다며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냐고 묻는다. 간수는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형이 집행되기 전에 안중근 의사의 수의를 입혀주기도 하면 안중근 의사 또한 직접 쓴 글을 선물한다. 안중근 의사께서 <동양평화론>을 쓰시는 모습에서 의사의 신념과 결의, 가치관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용기 있는 독립투사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올바른 생각과 그 생각을 실천하는 용기까지 갖고 있었던 본받을 만한 위인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를 소개하자면 대사 두 개를 소개하겠다. 첫 번째는 바로 안중근 의사께서 재판을 받기 전에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것이다. 뮤지컬에서는 목소리와 스크린에 글씨로 보이는 것으로 바로 “나는 일본재판소에서 재판받을 의무가 없다. 나는 의병군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를 죽였다. 따라서 나는 형사범이 아니라 전쟁포로다”이다. 굉장히 논리적이면서 당당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재판에서 이야기하는 대사로 이 대사를 들으면서 마음이 저리고 그때 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현실을 실감했는데 다음과 같다. “이토를 시해한 나는 사형, 명성황후를 시해한 미우라는 무죄. 어찌 일본법은 이리 엉망이란 말입니까?”이다. 이 대사는 불평등했던 일본의 대우를 정말 시원하게 말해주는 대사였다. 동시에 우리나라가 이때 힘이 없고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국가의 주권이란 얼마나 소중하고 필수적인 것인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키고 공정한 대우를 받으려면 우리나라가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다.
다음은 내가 깊게 감명을 받았던 노래를 소개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뮤지컬 ‘영웅’ 하면 바로 떠오르고 뮤지컬 ‘영웅’을 모르는 사람들도 알고 있는 ‘누가 죄인인가?’라는 곡이다. 이 곡에서 안중근 의사께서는 일본재판소에서 세계의 언론 앞에 서서 이토를 살해한 15가지 이유를 밝히며 누가 죄인이냐고 사람들의 의식을 깨운다. 그가 밝힌 15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한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케 한 죄,
무고한 대한의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죄,
조선의 토지와 광산과 산림을 빼앗은 죄,
제일은행권 화폐를 강제로 사용케 한 죄,
보호를 핑계로 대한의 군대를 강제 무장 해제시킨 죄,
교과서를 빼앗아 불태우고 교육을 방해한 죄,
한국인들의 외교권을 빼앗고 유학을 금지한 죄,
신문사를 강제로 철폐하고 언론을 장악한 죄, 대
한의 사법권을 동의 없이 강제로 장악 유린한 죄,
정권을 폭력으로 찬탈하고 대한의 독립을 파괴한 죄,
대한제국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원한다며 세계에 뻔뻔스런 거짓말을 퍼뜨리며 세계인을 농락한 죄,
현재 대한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천황을 속이고 밖으로는 세계 사람들을 모두 속인 죄,
마지막으로 동양의 평화를 철저히 파괴한 천인공노의 죄'
이러한 이유들은 일본이 조선에 저지른 악행들을 모두 정리해주는 것 같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도 재판 때 이 이유들을 말했다고 하니, 이 부분에서도 안중근 의사께서 얼마나 우리나라의 독립에 관심이 많았고 사랑하고 원했는지를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께서 그저 무력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라 굉장히 정세에 밝고, 똑똑하고, 깨우친 사람이었는지를 볼 수 있다. 당당하고 논리적인 안중근 의사의 말을 듣고 세계의 언론은 술렁인다. 분명 이 사람이 범죄자로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인데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누가 죄인이고 누가 잘못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누가 죄인인가?’라는 제목과 후렴구는 끊임없이 그 언론과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누가 죄인인 걸까? 이토 히로부미를 시해한 안중근일까, 아니면 한국의 주권을 강제적으로 뺏으려는 일본인가? 이 질문은 뮤지컬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보여주면서 그래서 궁극적으로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일본의 악행을 알리고 안중근 의사라는 위인에 대해서 소개한다.
인상 깊었던 곡을 2곡 더 소개하자면 바로 거사를 계획하며 유동하, 안중근, 조도선, 우덕순이 다 같이 부르는 ‘그날을 기약하며’라는 곡과 안중근 의사가 형 집행 전에 마지막으로 부르는 ‘장부가’라는 노래이다. ‘그날을 기약하며’에서는 유동하, 안중근, 조도선, 우덕순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시해하기로 결심하면서 결의를 다지는 곡으로 “잊을 수 없는 건 빼앗긴 조국 신음하는 우리의 부모 형제 우리가 가는 길 기약 없는 내일과 두려운 미래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라는 가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독립투사들의 정신을 이야기하고 상징하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장부가’에서는 안중근 의사께서 죽기 전에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고백하면서 ‘장부의 길 맹세했으니 두려워하지 말자.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오늘이 과거로 바뀌는 순간 나는 무엇을 생각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용맹스러운 모습이 너무 존경스러웠으며 안타까웠다. 안중근 의사께서도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고 하느님의 아이였는데 자신의 대의를 이루기 위해서 죽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강철처럼 강한 사람으로서 죽음 앞에서 당당했다면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공감이 되지 않았을 텐데 똑같은 인간으로서 고민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이 정말 와 닿았다. 정말 많은 사람에게 ‘누가 죄인인가?’, ‘그날을 기약하며’, ‘장부가’ 3곡은 꼭 들어보라고 소개하고 싶다.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모습과 당당한 모습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뮤지컬 ‘영웅’을 보면서 뮤지컬의 힘은 정말 크고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독립투사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저 그들의 업적 정도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뮤지컬 ‘영웅’을 통해 내 앞에서 독립투사들이 살아 움직이고 수많은 노래와 춤이 마음을 울리면서 역사에 더 이입되고 내가 역사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독립투사들의 일대기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신념, 가치관, 마음가짐, 결의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심으로 역사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보기만 하면 바로 애국심과 존경심이 끓어오르며 눈물이 펑펑 나고 웃음이 나며 그들의 모습에 뿌듯함이 가슴을 채우는 뮤지컬 ‘영웅’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진출처: 뮤지컬 '영웅'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