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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Apr 02. 2022

생일날엔 호박시루떡

- 호호호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윤가은)


생각해보면 생일은 정말 대단한 날이다. 한 해를 무사히 버텨내고 또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과 굉장한 행운이 모두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대 사건이다. 돌아보면 세상에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도 더는 나이를 먹을 수 없는 이들이 도처에 있다.
아무리 원하고 바라도 다시는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없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그러나 어떻든 이렇게 살아남아 또다시 생일을 맞이한다는 건 실로 놀라운 축복이고 기적이 아닐 수 없다.
- 호호호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윤가은)





며칠 전에 떡을 살 일이 있어 동네 방앗간이 딸린 떡집에 갔다. 테이블 위에 인절미, 개떡, 가래떡 등 여러 종류의 떡이 낱개 포장되어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호박시루떡에 눈길이 멈췄다. 어린 시절 매해 생일이 되면 시골집에서 맛보던 떡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할머니 생일상을 위해 엄마가 준비하는 특별 메뉴였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3남 2녀, 총 여덟 식구가 시골집에 살았다. 가족 생일에는 늘 시루떡을 했고, 할머니 생신에만 호박시루떡이 올라왔다. 내 생일은 할머니와 같은 날이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내 생일이 되면 호박시루떡과 시루떡이 둘 다 상 위에 올라왔다. 엄마가 떡을 두 가지나 만들기 귀찮았을 법도 한데 한 번도 빠짐없이 챙겨주셨다.


할머니와 내 생일날은 농사철이 아닌 한겨울이라 동네 떡 잔치가 벌어졌다. 시루떡보다는 호박시루떡이 단연코 맛있었다. 팥 아래 들어앉은 늙은 호박이 찹쌀가루와 버무려져 달달하고 찰진 맛을 냈다. 내 생일을 축하받았는지 기억은 없지만 배불리 먹던 호박시루떡의 달달한 맛만 남아 있다. 내 생일에 대한 존재감이 없어서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가장 특별했던 생일 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떡집을 가면 나도 모르게 시루떡 안을 살핀다. 그냥 시루떡인지 호박시루떡인지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고 호박시루떡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한 흔적을 좇는 게 아닌가 싶다. 집집마다 떡을 돌리고, 대식구가 함께 모여 하하호호, 나를 웃게 했던 생일날의 추억을 맛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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