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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Jan 20. 2024

그래, 이제 인정한다!

나는 할머니를 참 많이 닮았다






"성격 급한 것까지 어쩜 그렇게 할머니 쏙 빼닮았니?"

나는 어릴 적에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엄마 아빠한테 할머니 닮았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학교 준비물을 빨리 사야 한다고 조를 때도 그랬고, 어디 나갈 일 있을 때마다 몇 시간 전부터 서두를 때도 그랬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엄마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며 심술 난 아이처럼 굴었다. 할머니 닮았다는 소리보다 엄마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여장부' 소리 들으며 거침없이 행동하는 할머니가 어린 마음에 부담스러웠다. 사분사분한 엄마를 닮지 않은 것이 속상했다. 소심한 성격에 속마음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할머니는 자신을 쏙 빼어 닮은 나를 보며 은근히 뿌듯해하셨고, 우리 집의 최고 권력자였다. 가족 구성원으로 자아에 눈을 뜨며 집안의 서열 순위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려서였을까? 생김새도 성격도 엄마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으면서도 우리 집의 권력이 할머니로부터 비롯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한편으로 할머니와 동질감을 느끼며 우쭐한 감정이 꿈틀댔다.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3남 2녀 중 막내였던 나는 이미 작은 공동체 속에서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던 건 것이다.


나는 커서도 할머니 닮았다는 소리 대신 엄마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부인할 수 없는 닮음의 근거들이 너무나 확연히 드러났다. 두드러지는 것 중의 하나는 외모였다. 머리를 뒤로 돌돌 말아 비녀를 꽂고 다녔던 할머니는 서양 미인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몸도 날씬했다. 상당한 미인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할머니'였을 뿐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한눈에 닮아 보이는 '짱구 이마'가 온통 내 머릿속을 장악했다. 또 한 가지는 성격이 급하다는 것이었다. 전라도 사투리로 '정삽하다'라고 표현했는데, '부지런하다'와 '조급하다'라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넘나들었다. 자신을 스스로 돌아봐도 성격이 급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60년 띠동갑에 생일까지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안 닮았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의미 없어 보였다. 할머니 생신날이면 내 생일도 세트로 묶여 호박떡과 시루떡이 나란히 생일상에 올라왔다. 할머니 생신 축하하러 온 동네 어른들이 안방에 둘러앉아 식사했고, 나도 할머니 곁에 앉아 생일상을 받았다. 할머니 덕분에 관심과 챙김을 받는 걸 기뻐해야 할지 나만의 생일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해야 할지 두 마음이 시소를 탔다. 그러면서도 매해 할머니 생일상에서 맛볼 수 있는 호박떡은 꿀맛이었다. 콩고물을 입힌 시루떡 사이로 드러나는 노란 호박떡이 군침을 돋웠다. 작은 입에 떡 한 조각을 가득 물고 오물오물 씹어 먹는 식감이 달콤하고 쫄깃했다.


그렇게 성장해 어른이 된 지금,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것이 마음 깊은 곳을 부유하며 불쑥 튀어 오른다.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가며 닮음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를 곱씹는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할머니의 삶을 퍼즐 조각처럼 조합해 다. 할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비슷한 집으로 시집와 시골 부자 소리를 들을 만큼 논밭 지기를 마련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지나왔고 한량 같은 할아버지 사이에 여러 자식을 낳았다. 그중에 두 아들만 살아남고 다른 자식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 나이에 떠나보냈다. 그때는 다들 그랬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할머니는 겉보기에 씩씩하고 대차 보였다. 그런 할머니에게도 험난한 세월을 지나오며 묵힌 감정들을 해소할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술과 담배가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술을 마시면 목소리가 커지고 소소한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자는 큰 방에서 골초처럼 담배를 말아 피우셨다. 할머니와 반대로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말수가 적은 아버지가 오히려 신기했다. 엄마는 고부 갈등으로 눈물짓는 날이 많았다. 할머니 덕분에 우리 가족이 시골 부자 소리 들으며 살 수 있었지만 어린 내 눈에 할머니의 단점만 도드라져 보이며 부끄러웠다. 그런데도 사람의 감정이란 묘해서 할머니의 영향력이 우리 가족과 동네 사람들에게 미치는 아우라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다. 내가 태어나던 해 60세였던 할머니의 나이가 나에게도 멀지 않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60년 세월이 불현듯 소설 속 이야기처럼 궁금하다. 시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험난했던 세월을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할머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반대로 할머니가 지금 시대에 태어나 교육을 받고 자랐다면 어떤 삶을 살고 계실까. 셈이 빠르고 부지런하고 자린고비 소리를 던 할머니가 자신만의 멋진 삶을 꾸려가고 계시지 않을까? 힘겨운 삶을 분출하는 통로로 술과 담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아픔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진다. 나 또한 한 계단 한 계단 역경을 딛고 아온 경험을 통해 이제야 이해하는 것이 안타깝고 죄송스럽다. 내 삶을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었던 '정삽한' 기질을 물려주신 할머니에게 감사드린다.


그래, 나는 할머니를 참 많이 닮았다. 이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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