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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Oct 09. 2024

“육체가 시들면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월간 <법무사>지 10월호, 명문장으로 읽는 책 한 권



※ 월간 <법무사>지 10월호 '명문장으로 읽는 책 한 권'에 연재한 서평입니다.


https://ebook.kabl.kr/magazine/ebooks/202410/76/index.html






“육체가 시들면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2009)



     러너, 마라토너라고 하면 트랙 위를 달리는 육상 선수의 모습이 떠오르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건강을 위해 달리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중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 각지에서 ‘마라톤 풀코스 25회 완주’라는 기록을 보유한, ‘달리는 소설가’로 불린다. ‘러너’와 ‘작가’의 조합이 이색적이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루키는 왜 ‘달리는 소설가’가 되었을까. 그는 전업 소설가가 되고 맨 처음 ‘건강 유지’의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20년 이상 계속 달려왔고, 일주일에 6일, 하루에 평균 10킬로를 ‘착실하게’ 달린다. 그렇게 달리는 일은 그의 삶에 하나의 중심축이 되었다. 이러한 달리기를 중심으로 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과 인생에 관한 최초의 회고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소설가, 번역가다. 그는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1979)을 수상하며 29세에 데뷔했다. 첫 장편소설 『양을 쫓는 모험』으로 노마문예신인상(1982)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받는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1987년에 발표한『상실의 시대』가 유례없는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저서로는 『해변의 카프카』,『댄스 댄스 댄스』,『《1Q84》 등 많은 소설과 에세이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40여 개국에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나는 소설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작정하고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126-127쪽)



     "달리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스스로 거장이 될 수 없는 세상 대다수의 작가에 속한다고 전제하며 많든 적든 재능의 절대량의 부족분을 여러 측면에서 보강한다. 가치 있는 소설을 장기간 계속 써나가기 위해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운다. 그에게 있어서 ‘기초체력의 강화’는 “좀 더 큰 규모의 창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알 될 일”(150쪽)의 하나다. 건강의 유지는 우리 모두의 고민인 만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착실하게 달리는 그의 도전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마라토너로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시간이 그의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긴 생명력을 발휘할 거라는 기대감도 준다.



말할 것도 없이 언젠가 사람은 패배한다.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쇠잔해간다. 빠르건 늦건 패퇴하고 소멸한다. 육체가 시들면 (우선 아마도)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그와 같은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을 - 결국 내 활력이 독소에 패배해서 뒤처지고 마는 지점을 -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소설가로서 내가 목표하고 있는 것이다. (152쪽)



     사람들은 종종 꿈과 목표를 향해 달리다가 체력을 모두 소진해 멈춰버리곤 한다. 그의 말처럼,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쇠잔하고, 육체가 시들면 정신도 갈 곳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사실을 곧잘 망각할 뿐이다. 다만 몸의 활력이 독소에 패배해서 뒤처지고 마는 지점을 조금이라도 미루기 위한 노력은 각자의 몫이다. 그에게 소설을 쓰는 일은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고, 길고 격렬한 격투 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152쪽)이다. 그만큼 그는 ‘쇠퇴해 있을’ 겨를이 없다. 누군가 자신에게 예술가가 아니라는 말을 하더라도 그에게 계속 달리는 일은 중요하다. 소설가로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달리고 기초체력과 집중력, 지구력을 강화해 글을 쓰는 힘의 원천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는 이야기에 관한 책이다. 좀처럼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았던 저자가 “소설가로서, 또 한 사람의 ‘어디에나 있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가”(261쪽)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달리는 소설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인생관과 문학관이 진솔한 이야기 속에서 긴 여운과 감동을 준다. 누구에게도 함께 달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마음만큼은 함께 달리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여행 가방 안에 언제나 러닝슈즈를 넣어두고 다닌다는 그의 일화를 상기하며 나만의 건강 필수품을 구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도 있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라고 전하는 그의 태도에서 좋아하는 일을 건강하게 지속해 오는 성공 비결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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