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적인 삶의 재발견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by 옥돌의 책 글 여행




규칙적인 삶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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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고 있나요? 저는 요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중년의 ‘책 글 여행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 날엔 나이 40, 50이라는 숫자가 제 삶 속에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는데요. 어느새 그 나이가 되어 지난 삶을 돌아보며 문학 작품 속 밑줄 그은 문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라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그때만 해도 멋진 문장, 명언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지 않았는데요. 이십 대 사랑의 열병도 앓아 보고, 삼사십 대 경쟁 사회에서 동료와 선후배에게 비교당하며,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온 세월이 꽤 흘렀습니다. 준비 없이 늘어나 버린 백 세 시대 막막한 노후 앞에서 삶의 지혜와 경험이 녹아든 문장에 기대곤 합니다.

그간 제 마음을 다독여 주었던 마음의 양서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책인데요. 제목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살아생전에 열한 권의 책을 썼고 그중 여덟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가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이 책은 그의 도서와 일기 등에서 삶에 대한 통찰과 정곡을 찌르는 아포리즘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그는 인간 삶의 비극적인 면을 탐구해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졌지만, 독설 속에 긍정의 삶을 모색하도록 이끄는 그의 열망과 투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의 연속으로 보았습니다. 모든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되고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고통에 시달린다고 했는데요. 인간은 욕망하고 만족하고 다시 권태를 느끼고 새로운 결핍(고통)을 시계추처럼 오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고통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탐구한 것이었어요. 그가 남긴 아포리즘이 1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누군가의 딸로, 아내로, 엄마로, 직업인으로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오는 동안 느껴왔던 내면의 고통을 공감과 이해로 감싸안아 주는 듯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이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질병이라고 정의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세상에서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망령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라고 독설하는데요. 저 또한 그런 생각을 종종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저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들과 비교하고 부러워하며 마음의 부침을 느끼곤 했거든요. 그들도 겉모습과 달리 저처럼 내면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 탓을 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속에 숨어, 제가 직면한 문제들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독설하는 쇼펜하우어에게도 불행이 있었을까요? 그는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학자의 꿈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한동안 증오하는 관계로 지냈습니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비통과 절망에 빠져 극도로 우울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꿈과 진로, 결혼 등에 관한 부모 자식 세대의 갈등은 전 인류의 영원한 숙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고통과 절망에서 빠져나온 쇼펜하우는 뒤늦게 학문의 길로 들어서면서 자신만의 체험을 철학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라는 그의 아포리즘을 곱씹으며 불행이 지나간 후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속의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산책합니다. 아픔을 통해 배우지 않은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얘기하는 쇼펜하우어의 생각이 가슴으로 스며드네요. 친구 사이가 틀어졌을 때, 큐피트의 화살이 빗나갔을 때, 도전하는 일마다 번번이 실패했을 때… 지나온 모든 순간의 아픔이 나만의 경험으로 체화되어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걸 문득 깨닫습니다. 나이 들지 않고 건강하게 부자로 영원히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변화를 좋아하는 저의 성격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제 발로 뛰쳐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통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으며, 얻는다 하더라도 진짜 행복이 아닐 거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시간이었습니다.

고통과 불행을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제 삶의 성장통으로 만들어 가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책 속의 한 줄 문장을 붙들고 제 삶에 적용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에게 적절히 어울리는 규칙을 정해놓고 인내라는 재능을 발휘해 습관화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긴 시간이 흘러 남들과 비교되지 않는 자기만의 위대한 삶이 쌓여간다는 것인데요. 즉, ‘규칙적이지 않은 위대한 생애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길 때마다 계획과 루틴으로 복잡한 생각을 털어내며 한 걸음씩 나아왔던 저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철학자가 앞서 생각했던 것처럼, 저만의 규칙으로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성장해 왔다는 걸 알게 되어 뿌듯하고 희망적인 날입니다. 제 가슴을 뛰게 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는 책 속의 한 줄 문장을 가슴에 담고 오늘도 힘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