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소설집 《그 여자네 집》

- 서평집 <인문학의 숲에서 길을 찾다》 중에서

by 옥돌의 책 글 여행




'그 여자네 집''에 갇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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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은 1999년 출간된 박완서 전집을 새롭게 선보인 개정판 중 여섯 번째 전집이다. 전집 시리즈는 1971년 3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발표된 박완서의 단편소설을 발표 시기순으로 나누어 모두 담았다.

이 책은 여섯 번째 전집으로 1995년 1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을 수록했으며, 마른꽃, 환각의 나비, 그 여자네 집 등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의 말처럼, 다른 전작들보다 한결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바로 보는 엄정함과 치열함이 살아 있는 소설집이다.

그 중의 단편소설 「그 여자네 집」은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그 안에 시대적인 슬픔과 이별을 절묘하게 녹여내어 생각을 확장하게 돕는다.


박완서 작가는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과 재학 중에 한국 전쟁을 겪으며 학업을 중단했다. 나이 40에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향년 80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40여 년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했다.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고, 한국문학 작가상, 이상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소설 「그 여자네 집」의 주인공 '나'는 북한 돕기시낭송회에 참여하게 된다. 그녀는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이라는 시 낭송을 준비하며, 시의 내용이 고향마을 곱단이와 만득이 이야기와 흡사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추억 속의 곱단이와 만득이의 연애를 회상하며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 '곱단이'는 아들을 내리 넷이나 둔 집의 막내딸이자 고명딸이다. 부지런한 농사꾼 아버지와 착실한 아들들은 가을이면 마을에서 제일 먼저 이엉을 잇는다. 그때마다 유일한 읍내 중학생인 '만득이' 제일 먼저 달려들어 부산을 떤다.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의 눈빛, 몸짓은 숨길 수가 없다. 당사자들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빨리 알아차린다.

“다섯 장정이 휘딱 해치울 일이건만 제일 먼저 곱단이네 지붕에 올라앉아 부산을 떠는 건 만득이였다. 만득이는 우리 동네의 유일한 읍내 중학생이라 품앗이 일에서는 저절로 제외되곤 했건만 곱단이네가 일손이 모자라는 집도 아닌데 제일 먼저 달려들곤 했다.”


곱단이네 집 일에 제일 먼저 달려드는 만득이의 행동은 사랑을 예감하게 한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공공연히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곱단이와 만득이의 연애는 두근두근 첫사랑의 설렘을 불러온다. 이들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로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이 샘솟는다.

그런 바람과 달리 곱단이와 만득이의 사랑은 시대적인 폭풍우를 만나 전쟁 속에서 급류를 탄다. 곱단이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거센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분노와 한, 슬픔만이 내려앉는다. 긴 세월이 흘러, 주인공 ‘나’는 노인이 된 만득이를 실향민들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이들의 뒷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여자네 집」은 만인의 관심사인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소재에 시대적인 아픔을 한데 엮어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상기시킨다. 문장마다 리듬감 있게 써내려간 언어에서 등장인물이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쉰다. 이들의 사랑이 더욱 애달프게 느껴진다.

이 소설은 사랑이라는 가벼운 주제를 가볍지 않게, 전쟁과 분단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무겁지 않게, 편안하게 써 내려간다. 읽는 이의 마음을 이야기 속으로 흡입력 있게 끌어당긴다. 전쟁 전후의 시대적 상황에 일상의 보편적인 감정이 스며들어 역사적인 아픔을 인식하게 한다. 시대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 《인문학의 숲에서 길을 찾다》, (8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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