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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Sep 27. 2021

내 친구 마이카(My car)

내가 애정 하는 것들


사람마다 애정 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마이카(My car) 그런 존재다. 내가 언제든 손 내밀면 곁에 있어주고 위로가 돼준다. 

12년 전 서울 지역의 어느 차량 영업소에서 은하색(은은한 하늘색) SM5 차량을 만났다. 그날 이후 마이카는 내 삶 속으로 들어와 19만 킬로를 함께 달려왔다. 오늘도 나는 마이카 운전석에 앉아 익숙하게 시동을 다. 몸에 잘 맞는 옷을 걸쳐 입은 것처럼 편안하고 아늑하다. 조심스레 때론 거침없이 페달을 밟으며 어디론가 떠난다.




마이카를 만난 건 2009년 봄이었다. 기존에 몰던 차량이 노후되어 바꿔야 하는 즈음이었다. 그 당시 나는 차를 소유하는 게 부담스러울 만큼 경제적인 곤궁 상태였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잦은 일의 특성상 마이카가 필요다. 인터넷 서핑 끝 중고차 바이백 할부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해당 영업소를 방문해 비치된 차량을 둘러봤다. 은하 SM5 차량이 첫눈에 들어왔다. 이전 차주가 3년가량 출퇴근 용으3만 킬로 운행한  차였다. 새 차와 다를 바 없을 만큼 양호한 상태였다. 월 30만 원가량의 할부금도 부담을 줄여주었다. 그날부터 은하색 SM5 차량은 내가 애정 하는 마이카가 되었다.



당시 친정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단독주택 위층 아래층에 살던 때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버지 명의를 빌려 차를 구매했는데, 아버지는 본인 명의의 차가 생긴다는 거에 은근히 좋아하셨다. 70세 되던 해 현업에서 은퇴하고 자동차도 정리하신 터라 명목상 중형차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좋으셨던 모양이다. 실제로 마이카는 친정 부모님과 함께  시간이 상당했다. 병치레가 았던 친정엄마를 태우고 종합병원을 자주 오갔다. 3년 전부터는 엄마의 보호자로 동행하던 아버지가 알츠하이머 환자가 되어 병원을 모시고 다닌다. 마이카 뒷좌석에 부모님을 태우고 달릴 때마다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얘기하신다. 부모님은 가끔 마이카 정비에 보태 쓰라고 봉투를 살짝 건네신다. 



내가 애정 하는 것들 중에 가장 가성비 좋은 물건이 마이카다. 마이카는 내 삶 한가운데를 함께 달려오며 열 일을 했다. 마이카 속의 블랙박스가 그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모든 기록을 갖고 있다면 장편 드라마 한 편은 될 것이다. 새 차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마이카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질타를 동시에 받았다. '중형차 타는 걸 보니 사업이 잘 되나 봐?', '사정이 어렵다더니 중형차 타는구나!' 사람들의 상반된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카는  내 발이 되고 꿈이 되어 본업의 성장을 도왔다.



내 친구 마이카는 지금 19만 킬로를 었다. 이전 차주가 3년 운행한 3만 킬로를 빼면 16만 킬로를 함께 달려왔다. 서울-경기 외곽 순환도로를 마이카와 함께 몇 번쯤 돌았을까.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연결하는  다리를 몇 번이나 오갔을까. 힘든 세월을 함께 달려준 마이카에 미안한 마음도 있다. 비용 아끼느라고 엔진오일 교환 시기를 번번이 미루다가 정비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정비소 사장님의 조언이  들어왔다. '연식, 킬로수 상관없이 관리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그 후로 나는 정비소에 들러 마이카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요즘은 정비소에서 '이 정도면 관리 잘  차예요, 30킬로도 끄떡없어요'라고 얘기한다.




요즘 나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마이카와 이별연습을 하고 있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노후되어 지만 휘발유차의 종말도 머지않은 까닭이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함께 듣던 찬양 음악을 오늘도 볼륨 높여 마이카와 함께 듣는다. 골이 깊던 내 마음의 주름을 어루만져주고 펴주었던 찬양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이카의 운전대를 양손으로 어루만지며 집 앞 주차장으로 돌아다. 마이카에서 내려 보니 은하색 위로 먼지가 내려앉아있다. 조만간 애정 하는 마이카를 위해 손세차로 구석구석 깨끗하게 새 단장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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