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주인공(박정민)이 쓴 습작 노트를 교생 실습 나온 선생님이 훔쳐가 이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이 영화에서는 노을이 주된 정서로 등장한다. 아래 글은 여자 주인공(김고은)의 대사다.
"수도 없이 봐온 노을인데 노을이 그런 것인지는 처음 알았어. 장엄하면서도 이쁘고, 이쁘면서도 슬프고.. 슬픈 것이 저리 고울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슬픔이 아니겠지."
내 안에 품고 있던 첫사랑 해넘이 노을이 떠올랐다. 장엄하고 이쁘면서도 슬프고 고왔던, 그런 노을이었다. 그럴듯한 수식어 하나 붙여주지 못한 채 가슴속에 품어왔던노을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스무 살 여름, 고향 마을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고속버스 창가 좌석에 앉아 늦은 오후 풍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느리게 내려앉는 해 질 녘 태양을 따라보며 떠나온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고향 마을을 떠올리고 있었다. 산 위로 서서히 내려앉는 태양 언저리로 붉은 기운이 감돌더니 하늘을 삽시간에 빨갛게 물들였다. 심장이 찰나적으로 멈추는 듯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작은 욕망이 일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점차 사그라드는 해넘이 노을을 바라보며 아쉬움과 조바심이 마음속을 헤집었다. 그러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부질없는 욕망이었다. 존재하는 순간의 기쁨을 방해하는 감정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해넘이 노을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내 안에 들어와 각인되었다.
그 후로도 해가 뜨고 지는 수많은 날들을 지나오며 해넘이 노을을 만났다.모든순간이 장엄하고 이쁘면서도 슬프고 고왔다. 내 첫사랑 해넘이 노을 위로 중첩되어 다채롭게깊이를더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