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그 순간.
살다 보면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들이 있다.
때론 그 짧은 기억이 강렬한 인상을 주어 문득문득 기억이 날 때가 있다.
난 우연히 그 순간을 기억하곤 한다.
-입대일
2010년 1월의 추운 날 나는 진해에서 입대를 했다. 군대야 당연히 가야 하는 거였고 부담도 없었지만 3일 전부터 잠도 안 오고 긴장도 많이 됐었다. 그렇게 오지 말라던 엄마 아빠는 끝끝내 진해까지 따라왔고 이것저것 먹이려는 모습이었지만 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렇게 보내고 난 뒤 강당에서 1200명의 장병들과 함께 훈련소로 들어가는데 강당 한 구석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빠는 그곳에 서있었고 고개를 돌리던 그 순간 우연히 아빠와 나는 시간을 멈춘 것처럼 바라보았다. 나는 군생활 내내 그 우연한 순간을 잊지 못했다.
-첫 면회
입대 후 두 달이 지나 면회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집이랑 가까운 곳이어서 전 주부터 집에 전화를 걸어 면회 오기를 희망했다. 밖에서 먹는 음식들이 먹고 싶었다. 다른 마음은 전혀 없었고 먹고 싶은 음식들이 많았다. 그래도 그 마음 꾹 누르고 집에 전화해 먹고 싶은 거 없다고 그냥 오라고만했다. 당일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연신 옷에 각을 잡았다. 방송에서 내 이름이 나오고 면회실로 가니 부모님의 양손에는 더 이상 들 수 없을 정도의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자리를 잡고 하나하나 꺼내는데 피자, 통닭뿐만 아니고 엄마 냄새나는 집 반찬들도 가득했다. 배가 고팠고 허겁지겁 먹다가 시선이 느껴져 우연히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먹고 있는 날 바라보던 부모님의 모습.
20살 군대 가기 전 1년을 술을 먹고 논다고 엄마를 아빠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항상 건강하고 안 늙을 것 같았던 엄마의 눈에 주름이 보였다. 우연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난 너무 놀라 음식이 들어가지 않았다. 엄마가 늙는다는 것을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체한 듯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고 주름진 눈으로 그 모습을 걱정하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고개를 푹 박고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반찬만 뒤집었다. 동기들이 기다린다는 변명으로 서둘러 자리를 일어났다. 얼마나 정성껏 들고 왔으면 아직도 음식들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면회소부터 훈련소까지 직선거리, 난 뒤돌아보지 못하고 끝에서 겨우 뒤돌아보니 아직까지 그곳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먼 거리 엄마의 눈가의 주름이 들어왔다.
우연한 나의 첫 두 달이 2년 동안 먹먹하지만 가슴 따뜻한 곳 깊이 가지고 군생활을 마쳤다.
*난 우연찮게도 이병 때 '천안함 사건', 상병 때 '연평도 포격' , 말년병장 때 '김정일 사망'이라는 굵직한 사건들을 겪었고 군인들이 얼마나 수고로운지 잘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