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성 Jun 21. 2016

우리는 선택한다. 인간이 될지, 괴물이 될지를...

<페니 드레드풀> 리뷰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이단, 베네사, 머레이 공

괴물과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에는 인간과 괴물의 경계가 뚜렸했다. 괴물은 사악하고 주인공을 없에려고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괴물을 무찔러야 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보니 그 괴물들이 조금씩 공감이 가는 것은 무엇일까? 드라큘라,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크리처 등등 모두가 흉측한 모습을 하고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녀사냥이 일어나던 시절 힘 없는 소수자들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힘 없는 여자들은 마녀가 되서 화형을 당하고 범죄자들과 광인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되어 숲을 떠돌게 되었다.


<페니 드레드풀>은 빅토리아 시대와 산업화가 시작하는 시대 안에서 그 당시 싸구려 잡지에 나왔던 드라큘라, 늑대인간, 마녀, 프랑켄슈타인 등이 현실에서 존재하는 이야기를 전제로 한다. 이야기의 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언제나 악마의 속삭임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베네사 아이브스의 이야기와 다른 한 축으로는 프랑켄 박사에게 만들어지고 얼굴이 혐오스럽다고 버림받은 크리처(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으로 알고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박사의 이름이다. 크리처에게 이름이 없어서 사람들이 이 괴물을 프랑켄슈타인으로 부른 것)가 세상 속에서 핍박을 받고 사기를 당하는 슬픈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페니 드레드풀>을 보면서 쉽게 빠질 수 있는 착각은 베네사 아이브스의 이야기가 긴장감있고 나쁜 괴물들을 때려 잡아서 이 쪽이 메인 플롯으로 여길 수 있지만 <페니 드레드풀>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켄 박사가 만든 크리처 부분도 이해를 해야한다.


죽은 베네사를 바라보는 이단



믿음을 지키는 여자의 고난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늑대


<페니 드레드풀>에서 베네사 아이브스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계속 기도를 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루시퍼가 계속 그녀를 자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악마에게 계속 유혹을 받는 이유는 그녀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집안은 머레이 경의 집과 둘도 없는 친구 집안이었다. 베네사는 머레이경의 딸과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그녀의 친구가 결혼을 하기로 되어 있었고 베네사는 그녀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친구의 예비 남편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고 그 장면을 본 친구는 결혼을 포기한다. 그러하다 그녀의 친구는 드라큘라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죄책감이 베네사를 괴롭히게 된다. 서로 열려있던 집안의 대문은 잠기게 되고 베네사는 정신병원에 갇혀지지만 현대의 의학으로는 그녀를 고칠 수 없었다. 몇 년이 흐르고 베네사는 자신이 머레이경의 친구를 찾겠다고 하고 머레이 경의 집에 머물게 된다. 머레이경은 늑대인간인 이단과 프랑켄슈타인을 팀으로 꾸려서 그의 딸을 찾으러 다닌다. 머레이경은 처음에는 자신의 딸을 흡혈귀로 만든 베네사를 불신하며 딸을 찾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시즌 1에서 종국에 그녀의 딸을 찾지만 그녀의 딸은 드라큘라의 하수인이 되었고 구원을 거부하자 머레이경은 자신의 딸을 총으로 쏴 죽이고 베네사를 자신의 양딸로 인정한다.


루시퍼는 마녀들을 이용하여 베네사를 괴롭힌다. 이단은 자신이 늑대인간인 것을 깨닫게 되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간다. 루시퍼의 하수인인 마녀들은 베네사를 계속 괴롭히지만 머레이경과 프랑켄슈타인 박사, 늑대인간 이단 그리고 베네사는 마녀들과 루시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 전쟁 속에서 이단은 자신의 동료를 죽이게 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늑대인간이 되어 이성을 잃었을 때 살인을 했던 것을 자백하고 미국으로 송환되고, 머레이경은 자신의 동료를 묻으러 아프리카로 떠난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만든 릴리에게 사랑에 빠졌었지만 그녀에게 배신을 당하고 마약 중독자가 된다. 베네사는 자신 속의 진정한 악마 아무네트의 힘으로 루시퍼를 이겼지만 신의 빛으로 이긴 것이 아닌 악마의 힘을 빌려서 그녀는 점점 괴로워하고 폐인이 되버린다.


마지막 시즌에서 드라큘라는 베네사를 유혹하고 그녀는 믿음을 저버리고 드라큘라의 부인이 된다. 머레이경은 아프리카에서 이단의 인디언 양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납치된 이단을 찾으러 떠난다. 머레이경과 인디언은 이단을 찾았고 함께 이단의 아버지를 조우한다. 이단의 죄책감은 미국인들이 인디언을 죽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자신의 상관의 아들을 살해하고 이단은 인디언 부족의 전사가 된다. 인디언은 미국인들을 공격하는데 그곳에서 이단의 가족까지 살해하게 된다. 즉 이단의 아버지와 이단은 증오의 연쇄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에 머레이경이 이단의 아버지를 총으로 쏴서 증오의 연쇄는 끊어지게 된다. 머레이경과 사람들은 베네사를 구하기 위해서 영국으로 돌아오고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함께 드라큘라의 소굴러 들어간다. 이곳에서 마지막 싸움이 일어나고 이단은 자신이 늑대인간이 된 것이 신의 뜻이었고 자신이 루시퍼와 흡혈귀를 죽이기 위해서 신의 늑대가 된 것이 아니라 베네사를 구원해주기 위해서 선택된 것이었다. 악의 어머니가 되려는 베네사를 이단이 죽였다. 그리고 베네사는 드디어 그녀가 바라던 구원을 받게 된다.


베네사의 삶을 볼 때 베네사가 머레이경의 집안과 친했을 당시에 양 집안의 분위기는 에덴동산의 느낌이 난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 신이 첫번째 명령인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 불복종하게 된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락하게 된다. 베네사의 삶은 간음과 질투 그리고 배신을 통해서 그녀는 추방당했다. 베네사의 원죄와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겹쳐 보이는 것 같다. 베네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신께 기도를 하지만 악마의 유혹을 계속 받는다. 그녀의 앞에 나타난 루시퍼와 드라큘라는 그녀의 내면 속의 괴로움이었다. 베네사는 믿음을 저버리고 악을 받아들인다. 베네사는 완전한 악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그러나 신이 계획한 신의 늑대 이단이 나타나 그녀를 죽일 때 베네사는 그녀가 갈구하던 구원을 받게 된다. 베네사가 죽자 카메라가 피에타상을 잡는 것은 그녀가 성녀가 되었고 죄로 얼룩진 삶에서 성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라마의 배경이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공장들, 과학만능주의와 실증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 속에서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은 신화로 치부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고 인간을 초월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이다. 늑대인간이 되어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른 이단이 나중에는 악을 제거하는 대상이 되고 베네사는 자신의 죄가 온 세상을 구원하게 만드는 일을 보았을 때 신의 섭리라는 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신은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아담과 하와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었고 베네사와 이단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선한 신은 인간에게 선한 일을 택할 것을 원하셨다. 인간은 선한 선택을 할 때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지킬 박사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지킬박사 : 인간은 과학으로 신이 될 수 있을까?


<페니 드레드풀> 또 다른 축으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존 클레어(크리쳐)가 있다. 그는 인조인간으로 만들어 졌을 때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의 외모가 너무나 혐오스럽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존 클레어는 런던의 거리에서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한다. 연극단에서 일을 하지만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와 잘 안되고 극단에서 쫒겨나기도 하며 자신으 외모를 구경꺼리로 만드려는 악덕 업주를 만나기도 한다.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차이고 자포자기 해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하지만 박사는 그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그를 죽이지 않고 그에게 여자친구 인조인간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존 클레어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뒷통수를 치고 도리언 그레이에게 도망간다. 이 일 때문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마약 중독자가 되고 존 클레어는 인간을 혐오하여 극지방으로 떠난다. 극지방에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존 클레어는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며 자신의 가족을 찾아간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은 죽어가고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 존 클레어의 아내는 아들을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대리고 가서 살려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존 클레어는 그 말을 거부하고 아이의 시체를 들고 떠난다. 그리고 그는 아이의 시체를 물 속에 넣는다. 존 클레어는 베네사의 집으로 갔다. 왜냐하면 존 클레어를 순수하고 내면을 바라봐주는 존재가 베네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녀의 집에 갔을 때 그녀는 죽었고 존 클레어는 시를 읊으며 그녀의 비석 앞에서 그 비석을 바라보며 끝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이성과 완전한 과학을 꿈꾸는 남자이다.  그는 인조인간을 창조함으로 신의 위치에 서있으려고 했다. 신은 자신의 피조물들을 만들고 '보기 좋아더라'라고 하며 사랑을 하지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의 피조물(크리처)를 보고 혐오스럽게 느껴서 버린다. 존 클레어는 버림받음에 대한 상처로 인해서 박사를 증오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이런 행동은 산업화 시기 속에서 인간의

자만심을 보여준다. 이성을 가지고 신의 자리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인간이 서있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보여준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이 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이라는 존재는 완전한 존재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만든 여자 인조인간인 릴리에게 차이고 타락하는 모습은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무장했지만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시즌에서 그의 친구 지킬이 나오고 지킬박사는 자신의 약으로 정신병자를 정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릴리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서 협조하지만 릴리가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죽은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릴리를 풀어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풀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녀를 약물로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그녀를 하나의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프랑켄슈타인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지킬은 자신의 실험체인 릴리를 풀어준 것에 분노를 하고 자신의 과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욕망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미워하던 아버지가 죽어 자신이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때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지킬에게 '하이드 공'이라고 말할 때 소름이 돋았다. 원작에서 지킬은 약물에 의해 하이드가 되지만 드라마에서는 그의 욕망이 지킬 박사를 괴물로 만들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지킬박사의 차이는 과학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받아들였나 아니냐의 차이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마지막에 선한 선택을 하였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택했다.


자신의 목슴을 끊어 달라는 존 클레어와 총을 겨누는 프랑켄슈타인 박사


존 클레어의 눈 : 괴물은 누구인가?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해낸 크리처 존 클레어는 비록 외견상으로는 괴물이었지만 <페니 드레드풀> 속에서 제일 인간적인 존재였다. 존 클레어를 핍박하는 영국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은 괴물이었다. 자신들과 다르게 생겼다고 혐오하고 배제시키는 사람들이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페니 드레드풀>에서 두 주인공을 꼽으라고 하면 베네사와 존 클레어를 뽑을 것이다. 베네사가 가진 것들을 모두다 반대로 바꾼다면 그 모습은 존 클레어가 될 것이다. 베네사는 친구를 배신했지만 존 클레어는 프랑캔슈타인 박사에게 배신당했다. 그녀의 내부에는 색욕과 질투라는 괴물이 있었다면 존 클레어의 외모는 괴물이었다. 베네사는 죽었지만 존 클레어는 영원히 사는 삶을 살게 되었다. 재밌는 것은 외톨이였던 베네사의 말동무는 바로 존 클레어였다. 둘이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달랐지만 둘은 서로를 잘 이해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이다. 인간과 괴물을 나누는 기준은 어떻게 보면 무의미해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제의 인간이 오늘의 괴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방법은 선한 일을 하고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를 보면서 괴물의 모습을 한 존 클레어를 보고 누가 그를 괴물이라고 칭하겠는가? 베네사가 모든 악을 끌어 안고 죽은 후에 <페니 드레드풀>이 나름 좋은 엔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베네사는 죽었지만 존 클레어의 마음 속에서 베네사는 실존하기 때문이다. 영생의 존재인 존 클레어의 삶은 쉽지 않을 것이다. 차별받고 괴롭힘을 당하겠지만 베네사에게 사랑받았던 존 클레어는 선한 존재로 계속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


매춘부 소녀에게 말하는 릴리와 그것을 지켜보는 도리언 그레이


릴리와 도리언 그레이 : 영생을 살아가는 존재의 고달픔


창녀의 삶을 살다가 폐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브로나 크로프트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로 인해서 릴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릴리는 그 당시의 여성차별에 대해서 분노하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가부장적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뒷통수를 갈기고 도리언 그레이에게 도망갔다. 도리언 그레이는 다른 남자와 달랐다. 릴리가 학대받는 여성들을 모아서 도리언 그레이의 집에서 혁명을 일으키려 하자 도리언 그레이는 릴리를 지킬박사와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넘긴다. 릴리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며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설득시켜 도망치고 다시 도리언 그레이의 집으로 간다. 도리언 그레이는 릴리를 보며 자신이 영생의 존재라는 것을 밝힌다. 도리언 그레이가 탐미주의를 추구하는 이유는 자신이 영생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은 나이를 먹고 죽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를 지속하더라도 영생의 존재는 아픔을 계속 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쾌락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조인간이 되었던 릴리는 도리언 그레이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키스를 하고 떠나버린다. 그녀가 어디로 떠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녀는 아픈 사람들을 도우러 가지 않았을까? 그녀는 공장에서 일을 했었지만 증기기관이 들어오고 일자리를 잃고 창녀가 되버렸었다. 그녀는 아픈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도리언 그레이가 언젠가 릴리가 지쳐서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 모르겠다. 도리언 그레이는 귀족의 삶을 살고 쾌락만을 즐겼지만 릴리는 최약자의 자리에서 그녀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베네사의 무덤 앞에서 그녀를 추모하는 존 클레어


<페니 드레드풀>을 처음 보았을 때 B급 호러 드라마인줄 알았다. 그러나 캐릭터들을 하나 하나 뜯어 보니 결코 가볍지 않은 드라마다. 인간은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감정이나 신앙의 영역을 밀어내 버렸다.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은 점점 괴물이 되어 간다. 이 드라마에서 모든 캐릭터들이 인간과 괴물 사이를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극에서 인간으로 끝난 사람들은 모두가 선택을 했다.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픔을 같이 느끼는 그 마음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성입니다.

제가 책을 냈습니다. 서울을 돌아다니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책으로 엮게 되었습니다.

 5월 모든 서점에 <서울 르포라이터 도전기>가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가씨> 퇴폐의 서재와 매춘부에서 성녀가 된 여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