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성 Apr 18. 2017

현대의 '악'은 지극한 나르시시시즘 때문이다.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강상중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악이 등장하다


공허함에 뿌리를 내리는 악은 구체적인 목표도, 전략도 모릅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른 이들과의 교제도 악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말하자면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관관계를 도외시하는 악입니다.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사계절, P.38-39)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이라는 책은 악을 이해하는 책이 아니다. 악을 행하는 인간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묻는 책이다. 나고야 여대생 살인 사건을 분석하며 이 책은 시작을 한다. 나고야 여대생은 아무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방화를 하며 죄책감을 가지지 못한다. 강상중 교수는 그녀를 분석한다. 나고야 살인사건의 살인 용의자는 파괴하고 싶은 욕망에 젖어 있는 인물이다. 강상중 교수는 책을 전개해 나가면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나와 무관한 존재로 여기는 오류를 범한다. 마치, 살인범과 나는 완전히 다른 인종이며 그들을 보며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우리 안에도 얼마나 악이 많은가. 인터넷을 하다보면 어떤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꼬시다 ㅋㅋㅋㅋ'라는 말이 있다. 즉, 남의 불행에 대해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강상중 교수는 인간 내면에 누구나 악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가끔 상사에게 욕을 먹다보면 저 상사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충동을 느끼는 것이나 충동을 실현에 옮긴 나고야 살인 사건의 여대생은 일종의 연속성 선에 둘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비록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한순간이라도 누군가를 파괴시키고 싶은 욕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강상중 교수는 인간의 악을 인간 존재에서 추적하기 시작한다. 데카르트가 서양에서 '주체' 개념을 탄생시키고 나서 많은 사람이 주체를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런 주체를 흔들어 버린다. 정체성을 불안하게 만들어 인간의 내면을 공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인간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신뢰가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모두가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다. 모두가 핸도폰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셀카를 찍으며 '좋아요'를 기다리고 자신의 몸매에만 집중을 한다. 한 때 이런 사진을 본 적이 있다. SNS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사람의 셀카를 보았다. 그 셀카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인데 친구의 얼굴을 칠해놓고 자신의 얼굴만을 부각시켜 놓은 것이다. 내가 그때 받은 느낌은 그 사람은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 같아 보였다. 현대인들은 질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매우 불완전한 존재이다. 자신의 불안이 계속 될수록 정체성이 불안해지고 사람들은 공허함을 느낀다. 나고야 살인 사건의 여성의 경우 공허함을 세상에 대한 파괴로 형상화 된 것이지만 우리도 나고야 살인사건의 피의자와 다를바가 없다. 우리는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돈에 목숨을 걸고, 사랑에 목숨을 걸고, 섹스와 술 중독에 빠진다. 발현되는 형태가 다를 뿐 그 근본은 같다는 것이 강상중 교수의 생각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를 악의 구렁텅이로 밀어 붙이다.


자본주의의 금융화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금융 상품이 많이 생겨나는 동시에 우리가 가치나 부를 낳는 원천이라 여기던 생산 그 자체가 금웅화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의 확대가 되돌릴 수 없는 자산상의 격차와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야기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사계절, P.127)


하지만 '축적하라, 축적하라, 무한대로 축적하라'라는 경제 논리를 밀어붙인 결과 '독립적인 중산 계층'은 머지않아 영리 기계가 되어 금욕적인 논리도 사라지고 그저 자본 축적에 복무하는 형태로 변해갔습니다. 이해타산이 만연한 세계가 일반화되면 에고이스트들이 득세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사계절, P.130)


금융 자본주의의 문제점이라면 바로 실제 사용가치의 부재를 들 수 있다. 가령, 내가 쓰는 핸드폰이 5년 정도 쓸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1-2년을 쓰고 핸드폰을 다른 것으로 교환한다. 우리는 핸드폰이라는 기능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갤럭시를 쓰는 것이나 아이폰을 쓰거나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핸드폰이 나올 때마다 줄을 서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소비하는 것이며 '기호'를 소비하는 것이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사는 것, 애플이라는 브랜드를 사는 것이다. 즉, 사물의 실재 가치보다 상품의 차이에서 오는 가격만을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호라는 허깨비를 소비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런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공허감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경쟁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많은 돈을 벌고 누군가는 돈을 벌지 못한다. 이 시대는 돈을 못 버는 사람은 곧 벌래가 되 버리는 사회다. 당연히 자본주의에서 돈은 벌어야 하지만 그 정도가 과도하게 되어,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근면하게 살아야 한다. 다만, 절대 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쩌다 쉬게 되어도 일을 놓고 쉬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월급 통장의 돈을 모으지만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공허감 뿐이다.



사랑, 너를 볼수 있는 힘


가장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뇌는 역시 아들을 잃은 것입니다. 왜 아들은 나보다 먼저 생을 마친 걸까. "어째서 이런 마음의 병에 시달려야 하는 거지?" 이런 폐부를 도려내는 듯한 아들의 물음에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계속해서 의문을 가졌을 터입니다. '하필이면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걸까.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라고요. 신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는 이반 카라마조프처럼 아들 역시 신에게 계속해서 질문했겠지요.

온 몸을 건 아들의 물음에 저는 그저 대답을 뒤로 미루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대답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용서에서 구하고, 기독교계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해 남은 일생을 아들 같은 젊은이들과 마음을 교류하는 일에 바쳐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개혁에 전념했지만 결국 대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사계절, P.142)


악이 병인 한 악은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회로를 찾아내는 일은 가능할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미워하기에도 다른 사람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더욱이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타자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존재라면 악은 인간의 자유와 타자와의 공존이라는 영원한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사계절, P.173)


강상중 교수가 말하는 현대 악의 근원은 바로 타자의 부재이다. 현대가 발전하면서 개인은 파편화되었다. 오로지 내 자신만을 바라본다. 이 책을 보며 내 자신을 바라보았다. 한 때, 대학원 진학에 실패해서 나를 지지하는 지반이 흔들렸다. 그때 느꼈던 느낌은 왜 나만 이런 고난을 받는가, 왜 나는 되는 것이 없을까, 세상이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아마 내 사정을 듣고 나를 위해 설교를 준비해주셨던 것 같다. 그때의 메시지는 우리는 모두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 욕망 때문에 우리가 본질적인 기쁨을 망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패를 겪었을 때, 세상에 분노하고 신에게 원망하는 것, 그리고 그 실패의 대상이 왜 나인가라는 고민을 한다. 그런데, 이것은 나만이 성공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이다. 왜 나만 성공하고 타인을 실패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대입에 실패했을 때, 취직에 실패했을 때, 세상에 분노하고 나를 이긴 사람에 대해 분노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들은 사회의 룰을 어기지 않았다. 강상중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기독교적이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고 사랑함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 내가 세상 속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내 안의 공허감으로 탈출하게 된다. 타인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일종의 나의 이기적 욕망을 누루고 이타적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한다.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사회 속에 타자는 아무도 없고 나 자신만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얼굴만 보고, 나 자신만을 사랑하고, 나 자신이 이 세상의 불완전한 신이 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타인의 눈물에 공감한 적이 있는지를...


아래는 목차입니다!!!!!!!!!


오늘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어쩌면 어제였나, 나는 모르겠다. 

서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12 압구정동 :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중입니다 
22 강남대성학원 : 답을 잘 찍는 사람이야말로 승자다 
30 N타워 : 나는 죽지만… 너는 살아… 왜냐하면… 
38 신촌 : 아프니까 왜 청춘이냐 
46 강남역 : 아침에는 영어 학원으로 
54 경복궁 : 설현은 안중근 의사를 몰라서 눈물을 흘렸어 
61 대학로 : 김제동의 농담 
68 한국은행 : IMF 이후 한국에 등장한 근대적 인간들 
75 KBS 방송국 : 셀카 찍는 사람들의 고독 
83 광화문 교보문고 : 1년에 한권도 읽기 힘든 당신에게 

서울 속의 우리에 관하여 
94 강남역 : 무차별 살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102 K-Star Road : 대중들은 아이돌을 고르느라 샤샤샤 
109 종로 3가 : 어느 개저씨의 죽음 
116 잠실 롯데월드 : 헬리콥터 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124 쉑쉑버거 강남역점 : 힐링사회의 그늘 
132 청담동 유흥업소들 : 강남패치와 희생양 
140 홍익대학교 : 홍대 앞에 나타난 거대한 일베 조각상 
147 서울시립미술관 : 이게 미술이냐 
153 선릉역 : 결국엔 무엇이 남을까 
162 광화문 광장 :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을 보다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174 서울대학교 : 대학은 학문하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181 구룡마을 : 인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나라 
188 삼성동 한전 부지 :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권리가 있다 
195 JTBC 방송국 : 직업으로서의 기자, 소명으로서의 기자 
202 여의도 국회 의사당 : 시인이 정치인이 되는 사회 
209 여의도 증권가 : 한국형 블랙프라이데이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217 서초동 사랑의 교회 : 사랑의 그 무게 
225 서초동 대법원 : 나의 위선의 가면이 진실된 가면이 되길 
232 신림동 : 국민을 광인이라고 배제시키지 말라 
240 서울시청 앞 광장 : 나에겐…… 우리에겐 꿈이 있다 


책구매는 아래 링크입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94940472&orderClick=LAG&Kc=


https://brunch.co.kr/publi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