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성 Apr 12. 2017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고 나 자신도 감시한다.

<감옥의 역사> 미쉘 푸코


<광기의 역사>를 잘 읽었다면 <감시와 처벌>은 읽기 편할 것이다. 왜냐하면 논리 구조가 똑같고 문제의식도 똑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우리의 눈에 프레임을 씌운 권력의 본질을 심도있게 생각한다. 도대체 우리를 조종하는 것은 누구인가. 도대체 우리의 감시자는 무엇인가.


축제로서의 사형과 중세


드디어 그는 네 갈래로 찢겨졌다. 이 마지막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왜냐하면, 동원된 말이 그러한 견인 작업에 익숙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마리 대신에 여섯 마리의 말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불충분해서 죄수의 넓적다리를 잘라내기 위해 할 수 없이 근육을 자르고 관절을 여러 토막으로 절단해야 했다.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사 p.24)


중세 시대의 처벌은 매우 미학적이었다. 죄인을 광장에 몰아놓고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었다. 광장에서 사형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군주와 영주의 권위와 개기면 죽인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었다. 이 당시의 감옥은 근대적 의미의 감옥은 아니었다. 단지, 사형당할 사람을 강금해놓는 장소에 불과했다. 중세 시기의 최고의 형벌은 구금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고전주의 시대 이전 범죄를 행한다는 것은 군주와 왕의 권위에 맞선다는 것이었다. 광장에서 벌어지는 사형집행은 일종의 축제였다. 사형수의 목숨을 오래 살려 두면서 그 고통을 민중에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왕이나 군주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며 권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공개적 사형 집행은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죄수가 자신의 무고함을 항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는 절대 권력을 지향하는 군주에게 위협적이었다. 광장에서의 죽음은 축제의 분위기를 내지만 인간의 머리가 이성으로 점점 커지자 군주는 위협을 받는다. 그리하여 개인을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감금시켜 버린다.



고전주의 : 분할, 개별, 훈육, 규율, 세분화


그에 반해서 다른 한쪽의 객관화는 처벌하는 권력의 재편성과 한 층 더 직접 결부되어 있던 만큼, 보다 신속하고 결정적인 몇 가지 성과를 올렸다. 예를 들면, 기호 체계화, 범죄의 규정, 형량의 계량 결정, 소송 과정의규칙, 사법관의 역할 규정 등이다. 또한 이렇게 된 것은 그 권력이 관념학파가 만든 담론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담론은, 이해관계, 표상, 기호 등의 이론에 따라, 또한 담론으로 재구성된 모든 계열과 생성에 따라, 인간에 대한 권력 행사의 일반적인 조제법이 되었다. 즉, 그것은 수단으로서의 기호학과 함께 권력을 문자 기록의 표면으로서의 정신, 관념의 통제 에 의한 신체의 예속화, 신체형의 의식에 대한 해부학보다 훨씬 유효한, 신체에 대한 일종의 정치학의 원칙으로서의 표상 분석이다.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사 p.166)


고전주의 시대의 감옥은 교도소다. 교도라는 것이 개인을 뭉쳐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방에 넣어 놓고 훈육을 한다. 이 훈육의 기본 토대에는 도덕성과 기독교가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근대의 감옥에서 어떤 사람을 훈육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훈육당하는 사람들은 광인, 매춘부, 정치범, 범죄자였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뽑자면 기존 체제의 관점에서 이성적이지 않은 인물들이다. 교도소는 이성적이지 않다고 사회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을 도덕과 종교의 이름으로 교화하는 것이다. 종교와 도덕의 이름으로 교화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근대 국가의 통치 방식은 일종의 내치(police)이다. 국가가 모든 개인을 직접 통제하는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을 만들어 개개인을 번호로 만든다. 이는 통치의 용이성을 가능케 한다. 근대 통치 권력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숨긴다. 도덕성과 종교성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은 모든 문제가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누구나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기 마련이며 죄를 짓기 때문이다. 근대 통치 권력은 인간의 정신을 개체화시켜서 통치하고 존재한다. 그러나 개개인이 자신의 문제만 보면서 그 부조리한 권력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일례로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아랍인을 총으로 쏳아 버린다.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자, 검사는 그의 도덕성을 탓하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다음 날 여자와 해수욕을 하고 관계를 맺은 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뫼르소는 부도덕성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 직전에 뫼르소 앞에 신부가 나타나 회개하라고 하지만 뫼르소는 이를 거부하며 화를 낸다. 이처럼, 도덕성과 종교로 교화시키는 것은 그 사회가 원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판옵티콘의 등장 (자동 감시화)


고전주의 시대에 공들여 만들어진 규율은 분명하게 규정되고 비교적 폐쇄된 자송 -병영, 학교, 대규모 작업장- 이 국한되어 있었고, 그 전면적인 적용은 단지 페스트에 감염된 도시라는 일시적이고 한정된 규모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벤담은 이러한 규율을, 결함이나 중단 없이 사회를 관통하면서 도처에서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여러 장치의 그물망으로 만들기를 꿈꾼 것이다.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사 p.323)


벤담의 <판옵티콘>을 읽어보면 골자는 바로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벤담이 판옵티콘을 구상할 때 경제난이 심했었다. 그리하여 그는 효율적으로 감옥을 설계한다. 그것은 바로 간수가 죄수를 감시하는 체제가 아니라 죄수가 죄수 자신을 검열하는 발상을 한 것이다. 판옵티콘의 중앙탑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간수가 잠을 자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키는지 모른다. 그러나 죄수의 입장에서 간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감시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죄수는 간수가 보지 않아도 간수가 원하는 행동을 한다. 벤담이 판옵티콘을 구상하며 제일 중시한 것은 바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내는 것이었다. 중세의 처형식이나 근대의 감옥은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 비용을 줄이는 것이 바로 밴담의 목표였다. 밴담의 정신 저변에는 자본주의적 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푸코가 벤담의 판옵티콘을 비유적으로 설명했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사회가 개인을 경제적 효용의 극대화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국 또한 거대한 판옵티콘의 사회다. 우리는 열심히 사는 것이 미덕이다. 5일동안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왠지 주말에도 일을 해야할 것 같고 스펙을 쌓아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고시 공부를 하는데 교회를 가거나 일요일에 쉬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이 자신을 감시하고 훈육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많은데 주위에 마른 여성들도 자신이 뚱뚱하다고 자신을 감시한다. 더 나아가 옆 사람의 살도 지적하면서 말이다. 돈을 안 벌고 글을 쓰면 또 옆 사람이 걱정을 해준다. 그런데 지금 이 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을 감시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주위 사람들이 계속 '경제적 인간이 되어 돈을 벌어야해' 그렇게 되면 괜히 내 자신이 불안해지고 내 자신이 불쌍해진다. 그리하여 내가 나태하게 놀고 있는 내 모습을 자신이 훈육하고 옆 사람이 한심하게 책을 읽으면 지적질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감옥이다.



권력과 지식의 관계


안식하는 주체, 인식외어야 할 대상, 인식의 양태는 모두가 권력-지식의 기본적인 관계와 그것들의 역사적 변화의 결과들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권력에 유익한 지식이든 불족종하는 지식이든 간에 하나의 지식을 창출하는 것은 인식 주체의 활동이 아니라 권력-지식의 상관관계이고 그것을 가로지르고, 그것이 조성되고, 본래의 인식형태와 가능한 인식영역을 규정하는 그 과정과 싸움이다.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사 p.59)


푸코는 지식과 권력을 통해 우리가 지배하는 권력을 설명하려고 한다. 푸코에 따르면 우리는 '앎의 의지'가 존재하며 이는 곧 권력욕과 동일시된다. 하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우리가 기존의 가지고 있는 지식 체계에 따라 지식을 해석한다. 2017년 대통령이 탄핵되자 촛불집회는 환호했고 태극기 집회는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두 집단이 서로 갈등을 하면서 느낀 것은 서로가 정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는 상대방을 틀렸다고 하고 교정하려고 보는 것이다. 푸코의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면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식체계라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 따른 것이며 우리는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만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푸코는 사회 내부에 서로를 배제하고 교정하려고 하는 것을 해석 권력의 투쟁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당나귀를 타고 가는 노인이 신발을 떨으트리자 '노인이 신발을 떨어트린 것은 진리를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 집단과 '그냥 떨어트린거야'라고 해석하는 집단이 있을 것이다. 서로는 서로를 교정하려고 하고 이 싸움 속에서 해석 권력의 투쟁이 시작된다. 마지막에 '노인이 신발을 떨어트린 것은 진리를 보이기 위한 것'이 이기면 그 해석은 진리가 되는 것이다. 푸코는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서양의 이성이라는 개념이 필연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바로 해석 권력이 승리했기 때문에 이 세상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권력들은 사회 내에서 서로 갈등을 한다. 푸코는 그 갈등들을 합쳐 놓은 것이 거대한 권력-지식으로 보았다. 푸코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자체 모두가 해석권력에 따라 형성된 것이라고 과감히 말한다. 여기서 남은 것은 과연 어떻게 우리가 권력으로부터 조종당하지 않느냐에 대한 문제가 남은 것이다.


푸코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지금 우리가 '정상'이라고 하는 것, 보편적이라고 하는 것,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왜 보편이고 정상이 되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그는 지금 보편성을 가지는 것 모두가 해석 권력의 투쟁의 산물로 보았다. 푸코에 따르면 서양의 플라톤주의와 이성의 원리가 중심이 된 것은 플라톤주의자들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이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를 이겨서 민주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거대한 담론일지도 모르지만 또 미시적으로 우리 개개인도 미시적 권력 투쟁을 한다. 푸코는 이런 보편적이고 당연한 것에 대해 반발을 한 것이다. 사회의 구조 문제를 보는 것, 그리고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이 푸코가 원하던 삶이라고 생각한다.


--------------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성입니다.

제가 책을 냈습니다. 서울을 돌아다니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책으로 엮게 되었습니다.

 5월 모든 서점에 <서울 르포라이터 도전기>가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목차입니다!!!!!!!!!


오늘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어쩌면 어제였나, 나는 모르겠다. 

서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12 압구정동 :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중입니다 
22 강남대성학원 : 답을 잘 찍는 사람이야말로 승자다 
30 N타워 : 나는 죽지만… 너는 살아… 왜냐하면… 
38 신촌 : 아프니까 왜 청춘이냐 
46 강남역 : 아침에는 영어 학원으로 
54 경복궁 : 설현은 안중근 의사를 몰라서 눈물을 흘렸어 
61 대학로 : 김제동의 농담 
68 한국은행 : IMF 이후 한국에 등장한 근대적 인간들 
75 KBS 방송국 : 셀카 찍는 사람들의 고독 
83 광화문 교보문고 : 1년에 한권도 읽기 힘든 당신에게 

서울 속의 우리에 관하여 
94 강남역 : 무차별 살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102 K-Star Road : 대중들은 아이돌을 고르느라 샤샤샤 
109 종로 3가 : 어느 개저씨의 죽음 
116 잠실 롯데월드 : 헬리콥터 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124 쉑쉑버거 강남역점 : 힐링사회의 그늘 
132 청담동 유흥업소들 : 강남패치와 희생양 
140 홍익대학교 : 홍대 앞에 나타난 거대한 일베 조각상 
147 서울시립미술관 : 이게 미술이냐 
153 선릉역 : 결국엔 무엇이 남을까 
162 광화문 광장 : 광화문 광장에서 희망을 보다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174 서울대학교 : 대학은 학문하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181 구룡마을 : 인생을 포기하게 만드는 나라 
188 삼성동 한전 부지 :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권리가 있다 
195 JTBC 방송국 : 직업으로서의 기자, 소명으로서의 기자 
202 여의도 국회 의사당 : 시인이 정치인이 되는 사회 
209 여의도 증권가 : 한국형 블랙프라이데이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217 서초동 사랑의 교회 : 사랑의 그 무게 
225 서초동 대법원 : 나의 위선의 가면이 진실된 가면이 되길 
232 신림동 : 국민을 광인이라고 배제시키지 말라 
240 서울시청 앞 광장 : 나에겐…… 우리에겐 꿈이 있다 


책구매는 아래 링크입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94940472&orderClick=LAG&Kc=


https://brunch.co.kr/publish


매거진의 이전글 현대의 '악'은 지극한 나르시시시즘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